‘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낙후된 구도심의 상권이 활성화돼 대규모 자본이 몰리면서 임대료와 물가, 지가 등이 상승해 원주민 및 기존 상인들이 내몰리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내심 환영할 만한 현상이지만 기존에 자리를 지키던 이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는 점에서 적절한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최근 여행·음식 등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을 통해 이른바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지역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와 안동 등도 TV예능프로그램의 후폭풍을 피해가지 못하는 분위기다. 경주·안동 지역이 방송에 소개된 후 관광객이 몰리면서 임대료와 물가 상승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기존 상인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 둘 떠나는 실정이다. 건물주와 상인들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경북 경주와 안동을 찾아 원주민과 상인들의 반응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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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안동 지역 주민들이 TV예능프로그램의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TV예능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알쓸신잡)’을 통해 소개된 이후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주요 지역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낙후된 구도심의 상권이 활성화돼 대규모 자본이 몰리면서 임대료와 물가, 지가 등이 상승해 원주민 및 기존 상인들이 내몰리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방송 후 경주 황남동 지가·임대료 대폭 상승…삶의 터전서 내몰리는 상인들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알쓸신잡’ 경주·안동 편이 방영된 후 경주시 황남동의 지가 지수는 112.533으로 전년 같은 시기에 비해 11.034%나 상승했다. 낙후 됐던 구도심에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상권이 급성장했고 이로 인해 임대료·지가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도시 경주를 재조명한 ‘알쓸신잡’은 경주의 관광산업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촉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긍정적 평가를 얻긴 했으나 심각한 부작용도 함께 유발시킨 셈이다.
스카이데일리는 경주시 황남동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황리단길’이라 불리는 지역 명소를 직접 찾았다. 황리단길은 인근의 대릉원이나 천마총 같은 관광명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갈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 상인들도 관광객 증가 현상을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황리단길 내에서 한복 대여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길(34·남) 씨는 “사실 방송에 나오기 전에도 관광객은 꾸준히 있었지만 방송에 소개된 후 손님이 거의 배로 늘었다”며 “주말 손님이 많을 경우엔 한복 60~70벌이 한꺼번에 나갈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광객 증가가 모든 이에게 반가운 현상은 아니었다. 방송에 소개된 후 관광객이 몰리면서 지가·임대료가 크게 올랐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하나 둘 떠나는 상인들이 생겨났다. 심한 곳은 임대료가 기존에 비해 10배 가량 올랐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전언이다.
황남동에서 한 평생을 살았다는 이선이(52·여) 씨는 “관광지로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건 좋은데 예전부터 이곳을 생활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겐 오히려 재앙이 됐다”며 “오랜 기간 장사하던 상인들 중 갑자기 크게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이들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황리단길에서 30년 가까이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안홍근(58·남) 씨는 “갑자기 이 동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상권이 활성화되자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크게 올렸다”며 “아마 나도 건물주를 잘못 만났으면 벌써 쫓겨났을 수 있다”고 전했다.
황남동에서 8년째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H부동산중개소의 조덕호(44·남·가명) 씨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월 임대료가 평당 2~3만원 정도(월 100만원 가량)하던 점포가 지금은 보통 평당 15~30만원(월 400만~500만원)까지 올랐다”며 “위치가 좋은 곳은 1년 사이에 임대료가 10배 이상 뛴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황리단길을 떠난 상인들은 지방 상권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는 TV예능프로그램의 이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과거 황남동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김영환(36·남)씨는 “방송 때문에 인기가 좋아져 좋겠다고 하는데 사실 그 이면에는 생계를 잃게 된 상인들도 있다”며 “이렇게 된 것이 100% 방송 탓은 아니지만 임대료와 물가가 오르면서 기존 상인들이 내몰리게 된 원인을 제공한 방송도 글 달갑지게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제2의 경주’로 지목된 안동…벌써부터 젠트리피케이션 조짐
‘알쓸신잡’를 통해 재조명된 안동시는 아직까지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진 않았지만 위기감은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경주시의 뒤를 잇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방송에 소개된 후 하회마을·도산서원 같은 주요 관광지를 찾는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안동시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2㎞ 이상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진입해야 하는 병산서원 주변은 주말이면 차량정체가 빚어지는 기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주말 하루 관광객이 4000명이 채 되지 않았던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은 방송에 소개된 뒤 주말 관광객이 6000명 가량으로 늘었다. 도산서원 역시 주말 이틀 동안 찾는 관광객 수가 기존 대비 약 30% 상승한 4500명에 달했다.
안동시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탈춤페스티벌·하회마을·월영교·봉정사 등을 찾은 관광객은 564만7000명에 이른다. 방송 효과로 관광객이 늘자 안동시는 ‘연간 1000만 관광객 시대’를 목표로 관광객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 안동시는 2030년까지 2600억원을 들여 성곡동 안동문화관광단지 규모를 기존 166만㎡에서 381만㎡로 넓힐 예정이다. 단지 내에는 오락과 휴양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 관광객 유치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러나 주민들과 기존 상인들 사이에서는 현재 상황이 그리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제2의 경주’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임대료와 지가 상승 조짐이 보이고 있어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안동시 일대 지가지수는 올해 5월 기준 104.856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68% 증가했다.
특히 안동시의 옥동(107.380) △서후면(105.761) △용산동(104.118)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642%, 3.980%, 3.887%씩 지가가 상승했다. 안동역 인근 안동찜닭골목이 위치한 서부동(103.473)은 3.508%. 안동문화의거리가 있는 삼산동(103.473)은 3.508% 각각 지가가 올랐다.
임대료도 상승하고 있다. 안동시 문화의거리에 위치한 D부동산 관계자는 “방송에 소개된 후 임대 문의가 하루하루 늘고 있다”며 “경주처럼 눈에 띄게 임대료가 오르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조짐은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상인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안동 문화의거리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남지현(32·여) 씨는 “3년 전 50만원이던 30평대 의류가게 임대료가 현재 월 70만원까지 올랐다”며 “6년 전 홈플러스가 들어온 후 매출이 반으로 떨어졌는데 건물시세는 오르니 아무래도 임대료가 또 다시 오르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임대료를 올리면 나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안동시 서부동의 안동찜닭골목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배성학(50·남) 씨는 “관광객의 증가로 음식점·카페 외에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업종에 상관없이 임대료가 올라 주변의 꽃가게와 문구점은 인상된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은 장사를 접었다”고 말했다.
안동시 동문동에 거주하는 이창환(37·남)씨는 “안동에 사람들도 많이 놀러오고 인기가 좋아진 것은 체감하지만 경주처럼 임대료나 물가가 많이 오르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날까 걱정된다”며 “주변에 가게를 접고 나가시는 분들이 하나 둘 모이는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거 환경이나 사업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기존 부동산 소유자들이 그만큼 투자를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임대료 상승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며 “임대료를 올리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저리 융자를 적용해주는 식의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나수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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