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방카슈랑스(bancasurance) 판매가 계속해서 줄고 있다. 은행의 점포 축소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규제로 인해 은행이 판매를 꺼린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금융업에도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나타나면서 서로 다른 업종과의 결합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시대에 뒤쳐진 규제를 완화하거나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카슈랑스, 은행 수입 줄고 보험사 수입 늘어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은행의 방카슈랑스 관련 수입은 줄고 보험사의 판매 수입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방카슈랑스 수수료 수입으로 2388억원을 거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1% 줄어든 규모다. 올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9.7% 줄어든 756억원, 2분기와 3분기에는 각각 10.8%, 2.3% 감소한 786억원과 845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생명보험업계의 방카슈랑스 실적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보험사(생보사)들의 방카슈랑스 초회보험료는 6조1948억원으로 전년 대비 42.6%나 증가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초회보험료 수입도 4조5073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6% 늘었다.
은행의 방카슈랑스 수수료 수입이 감소하는 이유로 은행의 영업점 축소가 꼽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국의 은행 영업점은 지난해 말 6405곳에서 올 상반기 6326곳으로 79곳 줄었다. 11곳이 새로 열었지만 90곳이 통폐합됐다.
이에 비해 보험사가 늘어난 이유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주요 판매채널인 보험설계사들의 영업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코로나 속에서도 항상 문을 열고 있는 은행 창구를 통한 영업이 대안으로 부각돼 방카슈랑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설계사를 통한 초회보험료는 전년 대비 1.8% 줄어들었지만, 생명보험업계 모든 판매 채널의 초회 보험료는 31.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방카슈랑스는 프랑스어 방크(banque·은행)과 아슈랑스(assurance·보험)의 합성어로, 은행이 대리점 또는 중개사 자격으로 보험사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영업 형태를 말한다. 넓은 의미로 은행과 보험사 간 공동 상품개발, 업무제휴 등을 포함한다. 1986년 프랑스에서 시작됐으며 우리나라는 2003년 8월부터 시행해 내년이면 시행 20년째를 맞는다.
방카슈랑스의 장점으로 먼저 보험사는 은행의 점포망을 판매 채널로 활용하므로 영업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은행의 경우 더욱 다양한 금융상품을 팔면서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고, 금융소비자는 한 곳에서 자산관리를 받는 ‘원스톱 서비스(one-stop service)’를 제공 받을 수 있다. 다만 은행의 이른바 ‘끼워 팔기’로 인한 불공정 모집행위나 특정 보험사 상품 위주의 판매(현재 25% 제한)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방카슈랑스 3대 핵심규제가 발목잡아
은행업권의 영업수익에서 이자 수익과 수수료 수익 비중은 약 9대 1인데, 수수료 수익에 포함되는 방카슈랑스 판매 수익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은행들이 생보사의 저축보험 상품 판매를 크게 확대한 데 따른 것이다. 2019년부터 계속된 펀드 사태로 인해 은행들의 금융투자상품 판매에 제동이 걸리면서 수수료 수익이 줄어들 위기에 처하자 이를 메우기 위해 방카슈랑스에 힘을 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적 상승에서도 업계에서는 규제가 방카슈랑스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입 당시 제기됐던 문제점은 영향이 적어 설득력이 떨어지는 데다, 금융소비자들도 이러한 규제로 인해 실제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국금융연구원(금융연구원)이 발간한 ‘방카슈랑스 3대 핵심규제 존치의 필요성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방카슈랑스의 경쟁력 약화 이유로 ‘3대 핵심규제’를 꼽았다. 이중 ‘판매상품 규제’는 방카슈랑스 채널을 통해 종신보험과 개인보장성 상품, 자동차 보험을 취급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판매비중 규제’는 은행이 판매하는 1개 보험사 상품의 모집액이 신규로 모집하는 상품 총액의 25%를 초과할 수 없도록 묶어두고, ‘판매인수 규제’는 은행이 각 점포(지점)별로 최대 2명만 방카슈랑스 상품을 판매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금융연구원과 전국은행연합회가 2016년 실시한 방카슈랑스 소비자인식 조사에 따르면, 방카슈랑스 채널은 전반적인 소비자의 ‘만족도’ 및 ‘향후 재 이용의향 비율’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타 대면채널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업계에선 방카슈랑스 완전 시행을 제한하는 핵심규제가 이 같은 소비자편익 및 금융회사 경쟁력 제고 등의 효과를 제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현재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취급이 불가능한 종신보험 등의 개인보장성상품은 저축성보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체 보험료에서 차지하는 신계약비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판매상품’ 규제가 보험료 인하여력 확대 효과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다.
실제로 앞선 조사에서 방카슈랑스 이용고객의 20% 이상은 핵심규제로 인해 실제 불편을 겪어본 경험이 있고, 약 60%는 규제들이 완화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2003년 방카슈랑스제도 도입 당시 제기됐던 대표적 부작용과 우려사항으로는 ‘불완전 판매’와 ‘구속성 보험판매(일명 ‘꺾기’)’, ‘일부 보험사에 의한 시장독점’ 등을 들어 방카슈랑스 핵심규제가 유지됐던 주된 명분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석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방카슈랑스 도입 후 상품종목이 저축성 상품에서 보장성 상품으로 단계별로 확대 시행돼 오면서, 방카슈랑스 채널은 타 판매채널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의 불완전판매비율을 유지해 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0년 하반기 기준 생명보험의 판매채널별 불완전판매비율을 살펴보면, 방카슈랑스 채널(0.02%)에 비해 설계사(0.12%)와 개인대리점(0.1%), 텔레마케팅(0.16%), 홈쇼핑(0.13%), 기타법인대리점(GA·0.33%) 등이 훨씬 높았다.
은행의 보험상품 판매직원을 점포당 2인으로 제한하는 ‘판매인수 규제’의 도입 당시 주된 명분 중 하나는 불완전판매의 절대 건수를 줄인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로 인해 방카슈랑스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제공에 제약이 발생하고, 불완전 판매 및 민원 발생을 유발할 소지가 있다. 실제로 영업일선에선 판매인 부족으로 방카슈랑스 상담 대기시간이 길어져 고객의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현행 방카슈랑스 규제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행위와 관련해 인위적인 제한을 두고 있는 나라는 없는 실정이다. 이는 향후 방카슈랑스의 ‘디지털화’에서 기존 오프라인 핵심규제가 온라인 채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저렴한 가격 및 편의성을 최고 가치로 두는 디지털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이 연구위원은 “규제의 실익과 기존 규제 명분의 설득력, 글로벌 스탠다드 및 디지털화 추세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현행 방카슈랑스의 3대 핵심규제를 존치시키는 것은 유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면서 “소비자가 방카슈랑스 핵심규제의 완화 또는 폐지를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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