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오랜 관찰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만들어진 근거 중심의 학문이에요. 자연의 힘을 빌려서 환자가 스스로 좋아지도록 도와드리는 거죠.”
한국에서 생산된 문화 콘텐츠 전반이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현상을 뜻하는 ‘한류’는 이제 문화의 한 흐름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당초 드라마에서 시작했던 한류는 BTS(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등으로 대표되는 ‘K-Pop’을 거쳐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의 대중문화를 전반에 영향을 끼친 지 오래다. 최근에는 화장품과 화장법, 성형 등을 포함하는 ‘K-뷰티’를 넘어 음식, 한복 등을 포함한 ‘K-컬처’가 각광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의 전통 한의학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일에 나선 사람이 있다. 바로 최주리(47) 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이다. 스카이데일리는 창덕궁과 맞은편인 서울 운니동에 위치한 최 이사장이 운영하는 한의원을 찾아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의료 관광 홍보차 해외 나가서 한의학 인기 느꼈죠”
최주리 이사장은 한의대를 졸업 후 한의원을 개업한 지 22년째를 맞은 한의사이다. 그가 한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집안 내력과 어머니의 권유, 여기에 학창시절 읽은 허준을 모티브로 한 ‘소설 동의보감’이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의 외할머니, 그러니까 증조할머니가 한의사이셨고 5촌 당숙도 한의사니까 집안 내력도 있는 셈이죠. 저희 어머니 꿈이 한의사였는데 어릴 때 집에 한의사가 많았고 서랍에 한약재들이 늘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저에게 한의사를 해보라고 권하셨어요. 원래 제가 식물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한의대 졸업이후 다른 병원에서 2년간의 부원장 생활을 거쳐 그는 울산에서 한의원을 열었다. 한의사로 활동을 하던 중에 그의 고민은 시작됐다. 제약뿐만 아니라 한약재 유통 쪽도 상황이 열악하다 보니 한약재와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비난의 화살이 한의사에게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중국산 한약재 나쁜 게 들어왔으면 한의사의 책임은 아니잖아요. 수입한 사람과 그걸 적절하게 관리 감독을 못한 담당 부처의 잘못인데 소비자이기도 한 한의사가 다 책임을 지게 돼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2011년에 ‘한의생협’이라고 생활 소비자 협동조합을 먼저 만들었어요. 공동구매도 해보고 하다 보니까 정책 제안을 하거나 어떤 사업을 수행할 때 한계가 너무 큰 거예요. 결국 중소기업협동조합으로 전환을 했죠. 그러면서 ‘한의산업협동조합’으로 이름도 바꿨고요.”
한국 한의산업협동조합은 지난 2012년 최주리 이사장이 만든 단체다. 현재 약 350여명의 한의사가 조합원으로 가입된 상태다. 여기에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회사, 한약재 유통회사까지 포함돼 있다.
“한의산업이 너무 취약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산업 전체를 발전시킬 수 있는 걸 고민하다가 처음에는 한약 제제를 과학화, 표준화시키는 일을 했었죠. 지금은 방향을 돌려서 ‘의료관광’을 통한 해외 진출 쪽을 하고 있어요. ‘임금님 수라상의 12첩 반상처럼 외국인에 내보일 수 있는 의료관광 센터를 해외에 수출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외국에 수출하려면 ‘일단 와서 보세요’하는 홍보전시장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러한 샘플을 아무도 안하니 내가 해아겠다, 그래서 울산에서 창덕궁 앞으로 올라왔죠.”
최 이사장은 의료관광을 홍보하기 위해 여러차례 해외로 나갔다. 그는 여기서 외국인들을 상대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고 말한다.
“해외 의료관광을 대형 병원들과 강남의 성형외과·피부과와 함께 가요. 홍보차원에서 당뇨 검사 등을 해주는데 이런 행사에 올 정도의 분들은 대부분 검사가 필요한 분들이에요. 근데 한의학은 그 나라에 없는 우리 전통의학이다 보니 외국인들 상대로 진맥하고 상담하면 신기해해요. 실제로 효과까지 보면 더 좋아하시는 거죠.”
그는 한약을 먹으면 간이 상한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혈액 검사를 직접 시행해 간수치를 재고, 한약에 대한 불신과 잘못된 한약 섭취를 통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일에 앞장서 왔다. 이와 관련해 정책 제안을 했다가 ‘국정농단’ 사태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한동안 곤혹을 치루기도 했다.
“2005년경부터 ‘한약 먹으면 간 녹아내린다’는 식의 한의학에 대한 비방이 시작됐어요. 한의사들은 보고만 있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행사에 참석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한의사뿐만 아니라 한의약 제조 농민, 수입업자, 유통 소상공인까지 다 망한다’면서 정책 제안을 한 것을 (박 대통령이) 검토해보라고 한 것이 국정농단이라는 오해를 산거죠.”
“한의학의 자연스러움이 창덕궁과 닮아있죠”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창덕궁에서 조선 시대 궁궐 약방을 재현한 ‘궁온溫약방’ 행사를 열었다. 내의원이라 불렸던 약방은 궁궐 안에 있던 의료기관으로 이번 행사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최 이사장도 여기에 참여했다.
“2018년부터 창덕궁에서 (봉사하는) 행사가 있으면 버선발로 달려갔어요. 사회적으로 배려를 해드리고 싶은 분들에게 궁궐 안의 따뜻한 온기를 드리고 싶었죠. 독거노인 분들을 모시고 싶었는데 이번엔 안됐어요. 이번 행사에서 첫날에는 시각장애인 분들을 모셨고, 둘째 날엔 다문화가정 분들이었죠.”
“환자분 중에 한의사 처음 보는 분도 계시고, 진맥이나 침을 처음 받는 분도 계세요. 다른 병원 다니다 오신 분이더라도 일단 궁이라는 장소 자체에서 마음이 열려서 오세요. 자연으로부터 힐링할 수 있는 다른 지역과 달리 서울은 궁궐이 힐링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궁궐에 있는 돌담이나 바위들이 다 600년 된 건 아니더라도 조선시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느낌이죠. 왕과 왕실 가족의 건강을 담당하는 내의원이 복원된 곳이 창덕궁이에요. 창덕궁의 자연스러움이 한의학과 닮아 있어요.”
인터뷰 곳곳에서 최 이사장의 한의학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개개인의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의학이 예방 백신을 만들지는 않지만 코로나 경증 환자나 코로나로 인한 후유증에는 일정 부분 도움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양의학이 생기기 전에 항생제나 백신이 없었던 시절에는 혼자 (병과) 싸워야 되니 한의서에서 면역에 대한 얘기를 했거든요. 한의학은 2000년 동안 다듬어온 매뉴얼이라고 볼 수 있죠. 어떻게 보면 관찰과 시행착오 거쳐 만들어진 근거 중심의 학문이에요. 그냥 조상의 유물로만 남겨져야 한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코로나의 해법은 면역력을 내 안에 기르는 거죠.”
20년 넘게 한의사로 환자를 진료하면서 기억에 남는 환자를 말해달라는 질문에 최 이사장은 너무나 많은 분들이 떠오른다면서 한참 후 대답했다.
“임상경험 20년이 넘어가고 차트 번호가 5만이 다 돼가요. 근데 한두 분을 뽑을 수는 없겠더라고요. 진통제를 하루에도 4, 5알을 먹어야 하는 생리통 환자, 한 달에 한두 번 항생제를 먹어야 가라앉는 방광염 환자, 스테로이드를 하루에 8알을 먹는 환자 등을 봤죠. 이런 분들이 혈압약, 당뇨약, 고지혈증약, 통풍약 안 먹고도 수치가 정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드리면서 건강하게 되시는 걸 보면 ‘한의사하길 너무 잘했다’ 생각하고 보람을 느끼죠.”
마지막으로 최 이사장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자연의 원리에 따라 환자가 나아지도록 돕고 궁극에는 음식이 곧 약이고 약이 곧 음식이 되는 경지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저는 제가 치료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연의 힘을 빌어서 환자분이 스스로 좋아지도록 도와드리는 거죠. 음식과 약이 같다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을 넘어 한 단계 더 나아가 나한테 맞는 ‘식약동향(食藥同向)’으로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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