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토큰증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업종과 손을 맞잡고 있다. 대부분 컨소시엄(협의체)을 구성해 조각투자 사업자 등을 자사 생태계로 포섭하는 모습이다. 금융투자 인프라에 ‘동맹 기업’의 기술·콘텐츠를 접목해 시너지를 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증권사들이 토큰증권 시장을 주도해 막대한 수익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여러 분야 ‘동맹’ 구축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올 2월 발표한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의 후속 법령 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상반기 중 국회 정무위원회에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금융위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후속 개정해 이르면 하반기, 늦어도 내년에 토큰증권 거래를 허용할 예정이다.
토큰증권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유·무형 자산을 소액으로 디지털화한 증권을 의미한다. 투자 대상은 주식·채권과 같은 전통적인 상품뿐만 아니라 부동산, 금·은, 미술품, 와인, 음악·책 저작권, 선박·항공금융 등 다양하다. 가상자산을 증권 영역으로 옮겨 투자 안정성을 높인 만큼 토큰증권 사업을 두고 증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증권사들이 토큰증권 시장에 진출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토큰증권의 성장 잠재력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씨티그룹은 3월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토큰증권 시장 규모가 2030년 4조~5조 달러(약 5200조~65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글로벌 토큰증권 시장이 20조~30조 원인 점 고려하면 연평균 20~30배씩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증권사들은 토큰증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업종의 기업들과 ‘동맹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기업·조각투자 사업자 등 디지털과 밀접한 기업부터 정보통신기술(ICT)·인터넷은행 등 중대형 기업까지 손을 잡은 상태다. 전략은 저마다 다르다. 컨소시엄을 결성해 생태계를 조성하거나 협력 관계를 맺는 식으로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선제적으로 전담 조직을 꾸린 뒤 디지털자산 비즈니스를 종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올 2월 HJ중공업·한국토지신탁과 선박금융·부동산조각투자 관련 STO(토큰증권 발행) 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음원 수익 공유 플랫폼 ‘핀고’를 운영하는 핀고컴퍼니와 STO 및 조각투자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 손을 잡았다.
지난달 30일에는 통신업계 선두기업인 SK텔레콤과 토큰증권 컨소시엄 ‘넥스트 파인낸스 이니셔티브’ 결성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양사는 토큰증권 인프라 구축과 토큰증권 대상 기초자산의 공동발굴·연계 서비스 시너지 창출 등에 협력할 방침이다. 미래에셋증권은 토큰증권 생태계 활성화 및 블록체인 분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도 주력한다. 이를 위해 토큰증권 발행희망 기업 및 프로젝트에 대한 인큐베이팅과 전략·재정 자문을 제공할 계획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미래에셋의 금융투자 인프라와 글로벌 네트워크·SK텔레콤의 기술력과 Web3 플랫폼 운영 노하우가 결합된다는 측면에서 높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토큰증권의 기반을 구성하는 IT기술·인프라 분야에서 우수한 결과물을 창출할 수 있고 동시에 금융·ICT 기반 Web3 생태계 확장의 초석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한투)은 인터넷전문은행과 손을 잡았다. 지난달 22일 한투는 카카오뱅크·토스뱅크·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토큰증권 협의체 ‘한국 투자 ST 프렌즈‘를 결성했다. 금융기관 중심으로 협의체를 결성한 첫 사례다. 이번 협의를 통해 한투와 인터넷은행들은 토큰증권 발행 플랫폼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한투는 연내 발행 분산원장 인프라를 구축하고 안정·보안성 테스트를 완료할 예정이다. 여기에 카카오뱅크·토스뱅크의 플랫폼 역량을 더해 토큰증권 상품 공급을 본격 추진한다.
한투 관계자는 “적합한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발행 인프라 구축이 토큰증권 생태계 구성의 첫 걸음이고 초기 생태계 구축이 완료되면 경쟁력 있는 조각투자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할 것”이라며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IT인프라 기술력과 카카오뱅크·토스뱅크의 플랫폼 경쟁력 등 파트너 간 시너지를 극대화해 토큰증권 활성화와 양질의 상품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미술품·명품, 공연·전시, 금·은 등 분야 다양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도 적극적이다. KB증권은 지난달 8일 토큰증권 발행·유통 관련 사업자로 구성된 협의체 ‘ST 오더스’를 구성했다. 주요 사업자로 스탁키퍼(한우), 서울옥션블루(미술품), 펀더풀(공연·전시), 웹툰올(웹툰) 등이 참여한 상태다. 기술회사로는 SK C&C·EQBR·하이파이브랩 등이 들어갔다. 이를 통해 상품화 과정을 거쳐서 고객에게 제공하기까지 단계별로 사업을 지원하고 같이 협력해나갈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NH투자증권은 올 2월 토큰증권 생태계 구축을 위한 기업 간 협의체인 ‘STO 비전그룹’을 출범했다. ‘STO 비전그룹’에는 NH투자증권을 중심으로 조각투자사업자·비상장주식 중개업자·블록체인 기술기업·기초자산 실물평가사 등 각 영역별 대표기업 8곳이 참여한다. 이를 통해 토큰증권 발행·유통체계 수립을 포함해 포괄적 사업기회를 함께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신한투자증권도 토큰증권 협의체 ‘STO 얼라이언스’를 올 2월에 만들었다. ‘STO 얼라이언스’는 안전 자산을 토큰화하고 다양한 기업들이 협업하는 조직으로 토큰증권 발행·거래를 위한 표준 및 최선의 사례를 설정하는 걸 목표로 한다. 현물 조각투자 플랫폼 피스(PIECE)를 운영하는 바이셀스탠다드와 MOU 시작으로 ‘동맹’ 회사 수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하나증권은 금·은 STO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협의체 구성에 들어갔다. 지난달 17일 한국금거래소의 최대주주인 귀금속 거래 플랫폼 아이티셋과 손을 잡았다. 금·은 현물을 토큰증권으로 쪼개서 일반 투자자들이 쉽게 매매할 수 있도록 접근하겠다는 계획이다. 하나증권은 또 루센트블록이 운영하는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소유’의 계좌관리기관으로 참여 중이다.
그밖에 SK증권·유진투자증권 두 증권사는 손을 잡고 지난달 22일 한국해양자산거래와 해양자산 관련 STO 사업 MOU를 맺은 데 이어 바른손랩스와 영화 판권 등 콘텐츠 STO 플랫폼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신증권의 경우에는 대신파이낸셜그룹이 지난달 15일 부동산 디지털 수익증권 거래소 카사(Kasa)를 인수하며 토큰증권 사업 경쟁력을 확보했다.
전문가들은 토큰증권 성장 과정에서 증권사가 가장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규제 차원에서 가장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고 디지털자산 산업과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자산을 소싱(상품 발굴)할 수 있는 곳이 경쟁력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어떤 자산이 토큰화 되냐에 따라 STO 시장의 활성화와 증권사의 수혜가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더 많은 자산을 조각화하거나 유통할 수 있는 여력을 보유한 증권사의 상대적 경쟁력 우위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발행과 유통 측면에서의 자본 효율성 및 수익성 제고 노력이 필수적인데 전통 자산 위주의 영업을 주력으로 영위해온 만큼 아직 토큰증권의 기초자산을 소싱할 수 있는 폭은 제한적”이라며 “시장 변화에 빠른 대응을 위해서는 다양한 자산 소싱 능력을 보유한 업체들 또는 기존 조각투자 플랫폼과의 상생 구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단기보다는 중장기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유효하다”고 조언했다.
윤유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발행을 주로 담당하는 스타트업보다는 유통을 담당하는 전통 금융사의 역할이 주목받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디지털자산 업체와 대비해 접근성·편리성·신뢰성이 뛰어난 증권사 수혜가 가장 두드러질 것”이라며 “증권사의 단기 매매수수료 수익은 크지 않겠지만 사용자 수 증가를 통한 플랫폼(MTS) 역량 강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토큰증권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에도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요건과 장외거래에 대한 기준 등이 부재하다는 점에서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발행과 유통의 분리 원칙이 적용되는 만큼 각각의 주체는 사업의 무게를 어디에 둘 것인지 추후 선택해야 할 것”이라며 “협의체 구성 외 추가적인 움직임이 나오기 위해서는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요건 등의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