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쓿은(쓿다·찧어서 껍질을 벗기고 깨끗하게 하다) 쌀 속에 등겨가 벗겨지지 않은 채로 섞인 벼 알갱이’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자손에게 받는 덕’을 이르는 말이다. “젊어서는 그렇게 고생을 하더니, 늘그막에 와서야 뉘를 보게 되는구나”와 같이 쓴다.
‘쓿다’라는 말도 요즘은 잘 쓰지 않는다. 모두 방아 찧어 놓은 것을 사다 먹고, 요즘 쌀에는 뉘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과거의 유물이 되고 있다. ‘뉘’에는 ‘세상이나 한 평생·한 세대’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런데 ‘볕뉘’라고 하면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
앞에서 말한 쓸데없는 것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햇볕을 은혜롭게 여기며 고맙게 이를 때’ ‘볕뉘’라는 표현을 한다. ‘임금의 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조식(曺植·1501~ 1572)의 시조에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이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는 임금의 은덕을 말한다. 우리말인데 설명이 더 어렵다. 아이고!
중부대 한국어학과 명예교수·한국어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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