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일이다. 미국 3대 바이오 클러스터의 하나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는 수십 명의 한국 바이오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미국의 유력한 바이오 연구소나 제약 회사 수석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필자는 당시 한국 바이오 스타트업의 미국 시장 진출 지원을 위해 여러 차례 이들과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한 미팅을 했다. 실제로 이들을 통해 다수 기업이 미국 바이오 시장 진출 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재미(在美) 과학자들의 볼멘소리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에 들어가고 싶어도 대학이나 연구소의 텃세와 높은 벽으로 인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하소연을 토로했다. 민간기업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더했다. 나중에 두세 분 정도가 국내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미국에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중국 상하이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현지에는 한국 화장품 업계 전문가 60명 정도가 중국 화장품 기업 취업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국내 기업들보다 훨씬 좋은 급여 조건을 제시하는 중국 기업의 스카우트 유혹에 날아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중국 기업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화장품의 품질이 좋아지고 마케팅 기법도 놀랄 만하게 바뀌었다. 급기야 중국 내수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이 퇴출당하게 되고 해외시장에서도 한국의 입지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부상했다. 비단 화장품뿐이 아니다. 자동차·조선·가전·디스플레이에 이어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한국 기술 위협이 현재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은 한국 인재 유입에 힘입은 바 크다. 안타까운 점은 아직도 이런 현상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구 재앙이 현실화하면서 국내에서도 이민이나 노동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한다. 개방형 국가로의 전환을 통해 인재 유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재가 모여야 자본과 기업이 같이 모여들면서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인재는 국적 부문이다. 인종이나 종교·관습·사회적 시스템 등 문화적 차이를 수용하는 이종 결합에 대한 거부감의 극복이 과제다. 우리와 유사한 입장에 처한 대다수의 선진국에서는 인재 영입을 인구 늘리는 방편으로 경쟁적으로 추진 중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인구 소멸로 국가 성장의 한계를 경험한 국가들이 과감하게 국가 시스템 개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다급함을 의미한다.
가까운 중국을 보면 소름 끼칠 정도로 이에 사활을 건다. 외국 국적 인재 유치에 앞서 해외에 나가 있는 중국 출신 과학자들의 국내 유입(차이나 유턴)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지 오래다. 해외 유출 인재 재확보를 위해 1990년대부터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인 ‘백인계획(百人计划)’이 2000년대 들어선 ‘천인계획’, 2010년 이후엔 ‘만인계획’으로 확대되었다. 인재·기술 유출을 우려한 해외 각국의 반발로 현재는 ‘치밍(啓明·계몽)계획’으로 이름을 바꿔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가 과학기술 프로젝트에 40대 미만의 젊은 과학자를 우대하고 연봉 외에 연구·생활비로 10억 원을 덤으로 지급한다. 최근 중국이 다수의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여 최상위에 오르고 있는 데는 이러한 중국 정부의 인재 중시 정책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을 보면 인재 흑자국이라기보다 적자국이라는 딱지를 당분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들어오는 인재보다 나가는 인재가 더 많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이는 시장 상황과 맞물려 있다. 국내 경제 환경이 갈수록 나빠져 이들 인재가 일할 공간이 좁아지고 대우가 좋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외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인재 유입과 관련해서도 한국 국적자나 한국계 인재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꺼리면서 외국 국적 인재가 들어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되었다. 중국의 인재 유치 공작에 한국의 핵심 과학기술자를 뺏기면서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처지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심지어 신생 스타트업이나 젊은이들은 국내 일자리가 없어 또 다른 이웃인 일본에서 보금자리를 찾는다.
한국이 지금보다 더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에서 최고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구호가 요란하다. 하지만 말의 성찬이나 의지만으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내부의 가치관이나 DNA가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리고 글로벌 스탠다드 수용으로 다양한 인종과 가치·문화를 담을 수 있는 용광로를 만들어야 한다.
의대 입학 정원을 증원하면서 이공계를 외면하고 모두 의사가 되겠다고 부모까지 설쳐댄다. 정부가 악순환을 유도하는 꼴이다. 차제에 교육 시스템의 전면 수정도 필요하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맞춰 평생 교육으로 장(場)을 넓혀야 한다. 실업계 학생들이 졸업 후 현장 취업과 학업을 병행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 땜질 처방이 아닌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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