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멕시코 사법부는 ‘직선제’ 법관들로 채워지게 된다. 변호사 자격만 있으면 출마 가능하며 판사 인원 및 권한도 축소된 사법개혁에 현직 판사들이 법원 문을 닫아걸고 파업하는 등 저항했으나 소용없었다. 향후 당국을 상대로 한 각종 소송에서 정부 및 집권당에 유리한 법률 해석을 할 여지가 높아진다는 우려 속에 현지 진출한 한국 기업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멕시코 산업도시 몬테레이의 누에보레온대 다니엘 플로레스 쿠리엘 경제학부 교수는 29일(현지시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판사 후보자들이 행정부·입법부를 장악한 여당 지지 성향을 보일 가능성과 위험성을 짚었다. 그는 “여당 지지 판사들이 사법부 내 다수를 형성할 경우 기업들로선 소송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상황을 맞을 수 있다”며 현 집권당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이 법관선출제를 강력 추진하게 된 맥락을 설명했다.
환경운동가 청원에 따른 동남부 열차(트랜 마야) 건설 중단, 에너지 국유화를 위한 전력산업법 무효화 등 주요 정책 관련해 법원이 연이어 제동을 걸자 전임 정부 때부터 사법부 개혁을 내세우며 판사 직선제를 밀어붙혔다는 게 쿠리엘 교수의 요지다. 전임 정부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시절을 말한다. 정권 연장에 성공해 10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취임했다.
환경공학자·운동가 출신의 현직 대통령 이력과 쿠리엘 교수가 설명하는 판사 직선제 추진 배경이 무관치 않아 보인다. 쿠리엘 교수는 “몇 가지 사례에 비춰 행정부가 법원 판결을 통제할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며 판사 직선제를 비판했다. “선거로 선출된 법관들이 행정부 속내와 어긋난 결정을 내릴 경우 임기 보장을 못 받게 되리라 압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기초인 ‘법의 지배’ ‘사법부 독립’ 원칙의 위배가 아닐 수 없다.
한국-멕시코 간 경제 정책을 비교 분석한 저서(‘한국과 멕시코의 경제 성장, 균형의 재조정’) 개정판까지 낸 지한파 쿠리엘 교수는 멕시코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의 법적 분쟁 대응 방식에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예컨대 당국의 허가 취소에 맞서 소송을 할 때 “편향된 사법부 하에서 기업들이 현지 정부 조처에 무방비 노출된다”는 것이다. 그가 “향후 멕시코에서 국제 중재 심판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상황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중재 메커니즘에 의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년 6월로 예정된 선거에 앞서 대법관들의 줄사표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날 알프레도 구티에레스 오르티스 대법관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오르티스 대법관은 상원의장앞 서한으로 조기사임 의사를 밝혔다. “대중적 지지에 의존한 공직엔 적합하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사유를 들었으며 “이것이 이른바 사법개혁의 합헌성에 대한 암묵적 수용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덧붙여 항의성 사의임을 분명히 했다. 2012년 12월1일 대법관에 오른 그는 정식 임기만료일이 내년 8월31일이다.
지난달 멕시코에선 의회 의결을 거쳐 대법관을 포함한 7000여 명의 판사들을 국민 투표로 선출하는 판사 직선제를 도입했다. 대법관 정원 감축(11명→9명), 대법관 임기 단축(15→12년), 대법관 종신연금 폐지, 법관 보수의 대통령 급여 상한선 초과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이 이뤄졌다. 이에 국내외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같은달 23일 에르네스토 세디요 전 대통령이 노에마-파도에 장문의 글을 발표했다.
웹매거진 노에마-파도는 자택 없이 여기저기 호텔 생활하는 것으로 유명한 억만장자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 창간한 세계적 매체다. 예일대 경제학 박사이자 제도혁명당 71년 집권 역사의 마지막(1994~2000)을 장식한 세디요 전 대통령은 노에마-파도 기고문을 통해 통렬한 어조로 멕시코 민주화의 허상과 문제점을 고발하고 있다.
최근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한 젊은 시장이 끔찍하게 살해된 것에 현 정부가 강경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 국내외 논란을 불렀다. 7일 멕시코 남부 게레로주의 인구 28만 도시(칠판싱고)의 알레한드로 아르코스(43) 시장이 취임 엿새 만에 참수된 채 발견됐다. 셰인바움정부는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이 창당·주도해 온 현 집권당의 “총알이 아닌 포용” 기조를 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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