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전(王翦)은 전국시대 말기 진(秦)나라의 장수다. 오로지 진나라만을 섬겼고, 갖은 풍파에도 두 마음 품지 않았으며, 강대한 초(楚)나라를 무너뜨려 진나라 천하통일에 쐐기를 박은 충신이자 명장이다.
왕전은 빈양(頻陽)이란 곳의 빈궁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첫 출사한 곳도 진나라였고 평생 충성한 나라도 진나라였다. 그러나 왕전의 관직 생활은 지위가 높아질수록 주변 견제를 받는 등 부침을 거듭했다. 훗날 진시황(秦始皇)이 되는 진왕(秦王) 영정(嬴政)으로부터 의심을 사기도 했다.
왕전의 활약으로 조(趙)·연(燕) 두 나라가 무너지자 영정은 최대 숙적 초나라로 눈길을 돌렸다. 영정은 “병사가 얼마나 필요한가”고 물었다. 왕전은 “60만”이라고 답했다. 젊은 이신(李信)은 코웃음 치듯 “20만”이라고 반박했다. 평소 왕전을 못마땅해 하던 영정은 기다렸다는 듯 “그대도 담이 작아졌소”라고 대놓고 면박을 줬다. 왕전은 그 의중을 알아채고 관복을 벗은 채 낙향했다.
기세 좋게 쳐들어 간 이신은 처음엔 승전보를 올렸다. 그러나 이내 초나라 명장 항연(項燕)의 반격에 무참히 박살났다. 영정은 몸소 빈양까지 내달려 가 왕전에게 복직을 청했다.
60만 대군은 진군(秦軍) 주력의 전부였다. 새파란 후배 앞에서 모욕받고 강제로 조정에서 퇴출된 왕전으로선 초나라와 밀약 맺고 회군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왕전은 오해를 사지 않도록 오히려 더 신중히 처신했다. 그는 초군(楚軍)과의 장기 대치 과정에서 영정에게 “좋은 전답·저택들을 내게 달라”고 누차 보챘다. 부장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충고하자 왕전은 답했다. “내겐 작은 욕심만 있을 뿐 역심(逆心)은 조금도 없음을 증명하기 위함이네.” 출병 초기 왕전을 경계했던 영정은 치중(輜重)을 적극 대줬다. 왕전은 기원전 223년 초왕(楚王) 부추(負芻)를 사로잡는 역사적 업적을 세웠다.
‘용병’ 출신으로서 당원게시판 논란 중심에 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거야(巨野)와의 김건희 여사 특검 협조로 출로를 찾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대표는 “내가 한 말은 아니다”며 부인했으나 당원들은 그간 용산과 각 세운 그의 행보 앞에 크게 우려 중이다.
조기 특검은 국민의힘의 차기 대선 고배로 직결될 여지가 크다. 특검 협조설이 허위라면 한 대표는 ‘내가 한 말 아냐. 친한계 누군가가 했겠지’ 식의 모호한 입장 대신 당에 대한 역심이 없음을 적극 증명하고 거야에 맞서 성과를 내야 한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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