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이제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겠다. 정확히 손님이 반으로 줄었다. 나름 두 시간씩 줄 서야 먹을 수 있는 맛집이었는데 지금은 손님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서울시 용산구 용문시장에서 맛집으로 손꼽혔던 고깃집 주인은 9일 먹고 살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탄핵 정국으로 시끄러웠던 연말까지만 해도 손님이 끊이질 않았으나 연시가 되면서 테이블마다 직접 고기를 구워줄 정도로 손님이 줄었다.
을사년 새해가 밝았지만 시름하는 자영업자가 늘었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도 푸념을 늘어놓았다. “코로나19 사태 때보다 지금 더 장사가 되질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찾는가 싶더니 단골 손님 외에는 찾는 사람이 없다.”
연말연시 없는 소비심리 위축
코로나19를 빚으로 버텨온 자영업자들이 다시금 대내외발 악재에 짓눌리고 있다. 누적된 고물가와 고금리로 내수 부진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등 장기화되고,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으로 물가까지 들썩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경기 둔화와 더불어 불안한 국내 정치 상황도 자영업자를 옥죄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월 대비 12.3p 급락했다. CCSI는 지난해 10월과 11월에 각각 102·100.7을 기록하며 기준선을 넘겼으나, 다시 기준선 밑으로 추락했다.
CCSI는 우리나라 가계부문의 생활형편·수입·소비지출·현재 및 향후 경기 판단 등의 개별지수를 지수화한 것으로, 100을 기준으로 100보다 높으면 전망이 긍정적임을 의미한다. 반대로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함을 나타낸다.
실제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올해 소비지출 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과반(53%)이 올해 소비를 지난해 대비 축소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장기화되는 내수 침체가 각종 지표에서도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특수를 누려야 할 연말연시에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무거운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기업 등에서 송년회를 취소하는 등 ‘조용한 연말’을 보냈다. 내수 침체 속 단비같은 특수마저도 놓치게 된 것이다.
환율 급등과 고물가
12·3 비상 계엄 선포와 이어진 탄핵 정국도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정국 불안으로 원화 약세와 글로벌 강달러 현상이 지속되며 27일 기준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83원을 넘어섰다. 환율이 1483원을 넘어선 것은 리먼 사태로 시작된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소폭 하락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1400원대 중후반을 오르내리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환율이 상승하며 수입 물가를 자극하고, 전체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뜩이나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지갑을 닫는 소비자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물가 상승으로 자영업자들은 원가 부담은 커져 주머니 사정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고환율에 따른 물가 상승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1.3%까지 하락하며 안정세를 보였던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2월 1.9%로 다시 반등했다. 12월 이후 본격적인 환율 상승세가 이뤄졌던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물가는 다시 오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파급 시차를 고려할 때 환율 상승은 지난해 12월 이후부터 반영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카카오·커피 원두 등 원재료의 수입 가격이 오르면서 식품 업체들이 줄줄이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지난달 기준 초콜릿은 1년 전보다 10.6%, 커피는 8.1% 올랐다.
자영업자 "인건비는 어쩌나?"
고용인을 둔 자영업자의 경우 크게 오른 최저임금도 고민거리다. 올해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1.7% 오른 1만30원으로, 1만 원 선을 넘었다.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 속 팔리지 않는 내수 부진까지 겹친 가운데 인건비 부담까지 커진 것이다.
서울 용산구에서 가족과 함께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가맹점주는 취재진과 통화에서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아들과 함께 2교대·3교대로 일하고 있다”며 “주말에나 사람을 주휴수당을 지급하기 않는 기준인 7시간 근로 기준에서 한 명 고용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편의점은 인건비가 비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며 “몸을 혹사시키더라도 인건비를 줄이지 않으면 영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편의점을 2곳 운영하고 있었으나, 올해 5월을 기점으로 편의점 한 곳을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한국경영차총협회가 발표한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만율은 숙박·음식점업 37.5%·서비스업 25.3% 등에서 높게 나타났다. 식당·모텔 등 3곳 중 1곳가량은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실정인 것이다.
쌓여가는 빚… 이자 갚기도 벅차
이런 대내외 악재가 자영업자에게 날린 청구서는 빚이다. 인건비·원재료비 등 비용은 커졌는데 소비는 줄어든 상황에 자영업자들의 빚은 쌓여만 간다. 특히 코로나19 당시 빚으로 버텨왔는데 소비 침체로 장사가 되질 않으니 빚 상환은 더욱 먼 이야기가 됐다.
8일 한국은행이 양부남(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성훈(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64조4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2012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다. 특히 2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액은 1060조1000억 원에 불과했으나 3개월 만에 4조3000억 원 불어났다.
소비 위축 등 대내외 악재에 대출 상황은 더욱 요원해졌다. 같은 기간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연체율은 1.70%로 전 분기 대비 0.2%p 높아졌다. 이는 2015년 1분기(1.71%) 이후 9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서비스업 경기가 얼어붙은 2020~2021년에도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0.5% 수준에 그쳤던 점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고공행진이다.
소득이 낮은 자영업자일수록 상황은 더욱 벼랑 끝에 내몰린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11.55%로 집계됐다. 취약 자영업자는 금융회사 여러 곳에서 대출이 있는 다중채무자이면서도 소득 또는 신용이 낮은 차주를 말한다.
이런 가운데 자영업자 소득과 신용 모두 낮아진 것으로 나타나 취약 자영업자가 크게 늘어날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차주 중 저소득·저신용 차주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각각 49만4000명·23만2000명으로 증가했다. 2022년 말과 비교하면 각각 2만5000명·3만3000명 늘어난 수치다.
중소득·신용 이상 자영업자에서 저소득·신용 자영업자로 전환된 자영업자도 늘었다. 중소득 이상 자영업자 중 2만2000명·중신용 이상 자영업자 중 5만6000명이 각각 저소득과 저신용 자영업자로 전환됐다.
정부 내수 활성화 고민
정부는 내수 신작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선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임시공휴일 지정이다. 연말연시 12·3 비상계엄사태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으로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내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8일 정부와 국민의힘은 설 연휴 전날인 오는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기로 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 경제 안정’ 고위 당정협의회를 마친 후 브리핑에서 “당정은 설 연휴 기간 내수 경기 진작과 관광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2025년 1월 27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으로 협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25∼26일 주말에 이어 28∼30일 설 연휴까지 모두 엿새 연휴가 생겼다.
이 외에도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할인율을 설 성수기(1월10일∼2월10일)에만 기존 10%에서 15%로 높이기로 하는 등 내수진작 대책을 내놨다. 영세소상공인 점포에서 사용하는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한시적으로 15%에서 30%로 두 배로 높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5년 설 명절대책’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계엄 여파에서 이어진 정국 불안으로 내수가 침체된 가운데 활성화를 위한 여러 방안이 강구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임시 공휴일 지정이 실제로 내수부양 효과를 내는지를 두고는 반론도 많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임시공휴일 지정 시 4조2000억 원의 내수 진작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공장 생산 차질·해외여행 증가로 오히려 내수 부양에 뚜렷한 효과를 주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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