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 여파에 따른 고(高)환율, 코로나 팬데믹 등 글로벌 경기침체로 올해 상반기 주춤했던 해외건설부문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우리와 같이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았던 주요 해외건설 수주처가 반등 흐름을 보이며 건설·플랜트 강자인 대한민국에 손을 내밀고 있어서다. 대미(對美) 수주액이 처음으로 20억달러를 돌파하고, 제2의 중동 수주 붐(boom)까지 예상될 정도다. 기회를 잡은 국내 건설업계는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이른바 ‘잭팟’을 기대하고 있다.
상반기 ‘주춤’ 해외건설, 美 수주 등에 업고 하반기 반등 성공
올해 하반기가 두 달째 접어든 시점에서 해외건설 수주가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 누적 해외건설 수주액(1~8월)은 178억6863만달러(약 23조3364억원)로, 작년 동기 160억223만달러(약 20조9000억원) 대비 12% 상승했다.
수주건수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 289건에서 336건으로 16% 증가했으며, 시공건수는 2231건(+8%), 진출국가는 85개국(8%), 진출업체는 281곳(4%), 기업 설립 후 최초진출은 25건(39%)으로 전년 동기 대비 일제히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인상 등 글로벌 경기가 불안정세를 보이며 올 상반기(1~6월)만 해도 누적 수주액이 121억달러로 작년 동기(147억달러) 대비 18% 감소해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7, 8월에만 54억달러에 이르는 공사물량을 수주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7월에 터진 삼성물산의 19억달러 규모 미국 ‘Taylor FAB1 신축공사(반도체 공장 건설)’ 수주 등이 이같은 실적 반전을 견인했다.
특히 그동안 아시아, 중동에 집중됐던 해외수주가 미국 시장에서 통한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8월 둘째주 기준 미국 건설시장 수주액은 20억6937만달러로, 사상 최대치였던 2015년 17억7199만달러를 이미 경신했다.
올해 총 대미 수주액은 25억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아울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조2500억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이 본격 추진됨에 따라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내년부터 대미 수주액이 더욱 증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제2의 중동 붐’ 기대, 사우디 660조원대 도시조성사업… 아시아도 순항
대미 수주와 함께 그간 주춤했던 주요 수주처인 중동시장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 시그널로 해석된다. 고유가에 따른 자금 확보로 밀려있던 대규모 국가개발사업을 재추진하는 모양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북서부 홍해 인근 2만6500km²(서울의 44배)에 ‘네옴(NEOM)시티’를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도시 하나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석유 중심 국가에서 스마트 친환경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나라의 명운을 건 대규모 비즈니스에 뛰어든 셈이다.
이 사업은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주도하에 5000억달러(약 667조원· 환율 25일 종가기준)가 투입되는 세계 최대규모 도시 조성 사업이다. 사우디 정부가 2016년 선포한 국가혁신전략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길이 170km 자급자족형 직선도시 ‘더 라인’, 바다 위 팔각형 첨단산업단지 ‘옥사곤’, 대규모 친환경 산악 관광단지 ‘트로제나’, 높이 500m에 세계 최대 너비의 쌍둥이빌딩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에 필요한 주택, 항만, 철도, 에너지 시설 등으로 분류되는 인프라·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입찰도 이뤄지고 있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글로벌 건설·플랜트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은 네옴시티 조성 사업 수주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특히 최근 사면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빈 살만 왕세자와 친분이 두터운데다, 세계 최고층 빌딩 UAE(아랍에미리트) ‘부르즈칼리파’ 건설 경험을 토대로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형건설사의 사우디 진출이 기대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10월말~11월초 사이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올해 8월까지 누적 해외 수주액의 45%를 차지하는 아시아 시장도 순항 중이다.
최근 베트남은 약 77조원을 투입해 1500여km 길이의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계획을 재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베트남 북부 하노이역에서 경제중심지인 호찌민시까지 1545km 구간에 시속 320km의 고속철을 설치하는 사업으로, 기존 24시간에서 경우에 따라 5~7시간으로 소요 시간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동남아시아 제조업 허브로 자리잡은 베트남 입장에서 국운을 걸만큼 중요한 국가기반시설 건설 사업이기도 하다.
주춤했던 상반기에도 베트남 시장에서 전년동기(10억3600만달러) 대비 37.5% 상승한 14억2400만달러를 수주할 만큼 국내 건설사들의 현지 입지가 강한 만큼 아시아 수주가 더욱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 정부 적극 지원 속 해외건설 다시 날까… “글로벌 경기 리스크 유의”
이 같은 흐름에 우리 정부 역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6월 카르야 인도네시아 교통부 장관과 교통인프라 협력 MOU를 체결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카르타에서 수도를 옮기려 하는 인도네시아의 공공주택사업부와 7월말 수도 이전·개발 기술협력 MOU를 체결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베트남과 더불어 아시아 주요 해외수주처 중 하나다.
아울러 원 장관은 10일 서울 중구 소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해외건설협회, 한국수출입은행 등 유관기관과 주요 해외건설기업 6곳(현대건설·삼성물산·GS건설·두산에너빌리티·현대ENG·삼성ENG)의 CEO를 만나 해외수주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네옴시티를 비롯한 해외수주에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한 원 장관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팀코리아’를 앞세워 해외 주요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정부간 협력 강화, 고위급 외교를 통해 수주를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원 장관은 8월초 사우디를 비롯해 쿠웨이트, UAE, 카타르, 오만 등 중동지역 대사들과 만남을 갖고 해외건설 세일즈 외교를 진행하기도 했다. 국토부는 새 정부 임기 내 해외건설 수주액 연간 500억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11월경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이 확정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직접 국내 건설사의 사우디 사업 참여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아 왕세자의 방한 여부에 건설업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다만 이 같은 긍정적인 흐름에도 여전히 글로벌 정세가 불안정하고, 각 지역 리스크가 상존하는 만큼 냉철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해외건설 수주에 워낙 변수가 많고 현재 글로벌 경기 상황이 좋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당장 ‘작년보다 좋을 것’ ‘하반기가 나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면서 “경기침체 국면에서 시장을 예의주시해야 하며, 사우디 네옴시티나 인도네시아 수도이전 프로젝트 등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를 우리가 수주하려면 기업뿐 아니라 G2G(정부 대 정부) 단위의 건설외교가 적극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상반기 대비 하반기 업황이 조금 더 나은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상황을 고려하면 예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상회하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라면서 “장기적으로는 정부의 지원도 있고 중동 수주도 증가하는 만큼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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