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5도를 상회하는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직장인들의 근무 복장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장과 캐주얼로 대표되는 단정한 옷차림에서 반팔과 반바지의 간편한 옷차림인 이른바 ‘쿨비즈(Cool-Biz)’를 도입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기존에 단정한 옷차림을 강조하는 인식이 워낙 강했었기에 짧고 파격적인 옷차림에 대해 거북함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쿨비즈 도입은 민간 기업을 넘어 공공기관으로까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몸이 편해야 일도 잘한다”…민간기업·공공기관 반바지·샌들 파격복장 출근 허용
‘쿨비즈’는 시원하다는 뜻의 ‘Cool’과 업무를 뜻하는 ‘Business’를 합성한 단어다. 여름철 업무 시 복장을 가볍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 지난 2005년 일본에서 처음 도입된 쿨비즈는 넥타이를 매지 않거나 소매가 긴 옷 대신 반소매 옷을 입는 것으로 대표된다. 나아가 반바지와 샌들 등의 옷차림의 경우 ‘슈퍼 쿨비즈(Super Cool-Biz)’라 불리기도 한다.
지난 7월 초부터 시작된 폭염이 8월 중순까지 이어지면서 일부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여름철 근무 복장의 간편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반바지와 샌들 등 ‘슈퍼 쿨비즈’ 복장을 허용하는 곳도 점차 늘고 있다.
대웅제약은 지난 2012년 쿨비즈를 처음 도입한 이후 2015년에는 반바지 착용까지 확대했다. 여름철에 한해 무릎길이 반바지와 깃 있는 티셔츠를 권장하고 공식 일정을 수행할 경우에는 반팔 셔츠와 노타이 옷차림을 권장하고 있다.
대웅제약 측은 “최근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91%가 ‘쿨비즈 제도의 취지에 공감하고 자유롭게 반바지를 입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응답했다”며 “에너지 절약과 일하기 좋은 환경을 통한 업무 효율성 향상에 영향을 미친 만큼 앞으로도 전사적으로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유유제약도 올해 부터 쿨비즈를 도입했다. 남성, 영업사원 등도 고객과의 미팅이나 외부출장 등을 제외하곤 쿨비즈 복장으로 근무할 수 있다. 에듀윌 역시 지난 7월 16일부터 8월 31일까지 쿨비즈데이를 실시 중이다. 업무에 영향을 주는 날을 제외하곤 복장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게 캠페인의 골자다.
공공기관도 쿨비즈 도입에 속속 동참하는 추세다. 수원시는 지난 3일부터 염태영 시장이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면서 전 직원에게 쿨비즈를 권장하고 있다. 수원시에 쿨비즈 패션이 도입된 것은 한 직원이 게시판에 올린 민원에서 비롯됐다. 해당 직원은 “너무 더워 반바지를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사항을 게시판에 올렸고 이후 염 시장이 반바지를 입으면서 현실화 됐다.
염 시장은 지난 6일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가벼운 옷차림을 추천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려 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가벼운 옷차림은 체감온도를 낮추고 여름철 에너지도 줄일 수 있다”며 “아직 저만 입은 것 같아 쑥스러우니 많이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시장이 직접 쿨비즈 차림으로 나서면서 수원시 공무원들의 반바지 착용도 늘어났다. 신호준 수원시 주무관은 “공무원들은 주로 단정하고 딱딱한 모습이 많았는데 업무 효율을 위해 형식을 깨자 직원들의 호응도가 남달랐다”며 “앞으로 일의 능률이 오른다고 판단되면 여름철마다 이어갈 계획이다”고 전했다.
부천시 역시 최근 전 부서에 슈퍼 쿨비즈를 도입했다. 지난 7일 ‘시원한 복장 시행’이란 공문을 발송하고 노타이와 반바지, 면바지 등 간편한 옷차림을 권장했다.
쿨비즈가 확대되면서 관련 제품의 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지난 5월부터 6월 남성 캐주얼 상품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해 10% 이상 늘었다. 시원한 소재인 면이나 마, 대나무 소재의 제품과 반바지 판매도 증가하는 등 남성 캐주얼 중 쿨비즈 관련 제품의 매출은 전년 대비 30% 이상 높았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5~6월의 쿨비즈 상품 매출이 전년 대비 14.9% 상승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역시 쿨비즈 상품의 매출이 껑충 뛰었다.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레드페이스는 지난 8일 폭염의 영향으로 숏 팬츠 상품의 매출이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쿨비즈에 대한 직장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쿨비즈를 도입한 기업에 근무 중인 30대 직장인 A씨는 “정장을 입는 것이 회사의 이미지나 일의 능률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파격적인 옷차림만 아니라면 반바지 착용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회사에서 쿨비즈 복장을 도입했다는 40대 직장인 B씨 역시 “처음엔 직원들의 눈치가 보였지만 선입견이 깨지고 나니 부담이 사라졌다”며 “점점 날씨가 더워지면서 다들 주저하지 않고 반바지를 착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암묵적 복장 제한 기업 여전…전문가들 “쿨비즈 열풍은 대세, 앞으로 확산될 것”
쿨비즈가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지만 아직까지 암묵적으로 복장을 제한하는 기업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잡코리아가 1117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가량인 48%가 근무 복장에 제한이 있다고 답했다.
암묵적인 복장 제한이 있다는 응답자는 36.1%, 엄격한 제한이 있다는 답변은 11.9% 등으로 각각 조사됐다. 제한사항으로는 정장 또는 캐주얼 정장이 37.3%로 가장 많았으며 작업복 등 유니폼이 32.3%로 뒤를 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지 않은 직장인들이 반바지 착용에 부담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 8월 잡코리아가 직장인 5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선호하는 여름철 근무복장으로 반바지와 슬리퍼를 제외한 부분 자율복장을 선택한 비율이 44.4%에 달했다. 슈퍼 쿨비즈 형태의 완전 자율복장은 26.6%에 그쳤다.
복장 규정을 제한하는 회사에 다니는 20대 회사원 D씨는 “직업의 특성 상 외부인을 만나는 경우가 많아 좋든 싫든 정장을 입고 출근해야 한다”며 “가끔 노타이 차림으로 있기도 하지만 상사들이 눈치를 줘 살짝 풀어만 두는 편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쿨비즈 열풍이 문화적 변화의 일환이며 굳이 권장하지 않아도 앞으로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재룡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위계질서를 강조하던 문화가 변화하면서 정장으로 대표되던 전통적 드레스코드도 자유롭게 변화했고 나아가 쿨비즈 열풍과 같은 현상으로 발현됐다”며 “폭염으로 인한 기후적 요인도 인습적 요소 탈피에 많은 자극이 됐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는 “21세기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의 변화로 가정과 일터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문화적 변화가 계속 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가 이어지다 보면 일상과 회사를 구분하던 드레스코드의 차이가 사라져 쿨비즈와 같은 현상이 계속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이한빛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