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법인 ‘푸른사람들’은 동대문구 지역에 기반을 둔 단체에요. 서로 왕래하거나 함께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정도의 범위죠. 자원 활동가들의 참여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조금 더 살기 좋은 혹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서로의 도움으로 조금씩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참여, 공동체 그리고 나눔 등의 가치를 위해 활동하고 있어요.”
1970년대를 전후한 지난날의 산업화 과정에선 여자라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경우가 많았다. 당시 여성들은 오빠 혹은 남동생의 학업을 위해 학교 대신 일터로 나가야 했다.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 등의 성차별적인 발언을 듣기도 했다. 이들은 교과서를 펼치지도 연필로 본인의 이름을 쓰지도 못했다. 어느덧 세월은 흰머리가 자랄 정도로 무심히 흘렀다. 이들은 늦더라도 한글을 배우고 싶었다.
1994년 창립된 ‘푸른사람들’은 30년 가까이 동대문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다. 한글을 배우지 못했거나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문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으면 초등학력이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또 1998년에는 이주노동자, 2003년에는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활동으로도 범위를 넓혔다. 2008년부터는 다양한 문화가 모이는 다문화도서관 ‘모두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인근 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동대문구 독거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지원하는 활동도 이어가는 중이다. 스카이데일리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위치한 ‘푸른사람들’ 사무실을 방문해 서화진 대표(50), 김윤환 상근활동가(28)와 단체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머니학교, 한글수업 등 전반적 학교생활 교육 제공
‘푸른사람들’은 1994년 동대문 지역에서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에 의해 ‘푸른시민연대’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거창한 대의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 무렵 사회적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졌다. 이웃 지역에서는 이미 비문해자를 대상으로 한글 교실을 열고 있었다. 서 대표를 포함한 창립 멤버들은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무슨 일들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한글 교육을 하는 ‘어머니학교’ 활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의외로 한글 교육이 필요한 분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당시 젊은 사람들 몇 명으로 구성된 저희로서는 돈이 많지 않아 지역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교육뿐이었죠. 주민들도 이를 필요로 해 ‘어머니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어머님들이 절실하게 원하던 배움이란 갈증을 한글 수업으로 채워드리며 시작한 것이죠.”
“예전엔 여자보다 남자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경우가 훨씬 많았어요. 저희 어머님 연세되시는 분들은 ‘여자들은 학교 안 가도 된다. 집안 일 돕다가 그냥 시집가면 된다’ 등의 말들을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셨죠. 그땐 다들 너무 가난해서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일찍이 일터로 나가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야 했던 분들이 많으셨어요. 그러느라 배움의 기회를 놓치셨던 것이죠.”
사회경제적 상황과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로 인해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여성들은 현재 ‘어머니학교’에서 한글 교육과 사회 교육 등 다양한 배움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 있게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자신을 위한 배움에만 그치지 않고 작은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면서 건강한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실천하기도 한다.
“한글 교육을 기본으로 학교 생활 전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연필, 공책, 교과서를 가지고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이죠. 단순히 공부만 하는 학원 같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수학여행을 가거나 만들기 활동도 진행해요. 학교에 들어와 함께 성장하며 자존감을 찾고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또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경험을 하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어머니학교’ 학생들은 공부하는 데 끝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의무교육이 끝나고 대학교에 가서 졸업장을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와는 달랐다. 어머님들은 지속적으로 배우고자 공부에 열정을 쏟았다. 누군가는 이를 평생교육이라고 불렀다.
“어머님들과 자원교사들이랑 교류하고 함께 기쁨과 슬픔도 나눌 때 행복해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손자 같이 대하면서도 때로는 선생님으로 대우해 주셔서 보람을 느끼고 있죠. 저희가 어머님들을 가르치긴 하지만 많이 배우기도 해요. 또 자원 활동을 하러 와주신 선생님들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들만 모일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죠. 가르치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인 것 같아요.”
국가, 인종, 문화 넘어 모두 어울릴 수 있는 도서관
‘어머니학교’ 외에도 ‘푸른사람들’은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 어린이 등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역시 큰 뜻을 품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 많이 유입되던 90년대, 국제결혼이 늘어나던 2000년대 초반에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한국어반을 개설해서 지역에 살고 있는 이주민 분들을 지원했죠. 그땐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등이 심각한 시기였어요. 한국어로 최소한 ‘너 때리지 마라, 욕 하지 마라, 월급 줘라’ 등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만큼의 교육을 제공했죠. 또 긴급한 일이 생겼을 때 전문기관을 연계해주거나 기본적인 상담 등 필요한 것들도 지원했어요.”
이주여성을 위한 지원은 절실했다. 이주노동자는 국내에서 생산 활동을 한 뒤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이주여성들은 국내에서 정착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2003년 당시 이주여성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는 전무했다. ‘푸른사람들’ 눈에 시댁이나 남편과 갈등을 겪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외면할 수 없었다.
“다문화사회로 접어들었다고 얘기하지만 인식이나 제도의 차원에서 여전히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편견이나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과 자주 접하면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2008년에 ‘모두도서관’을 만들었어요. 이곳은 국가, 인종, 문화 등을 초월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죠.”
‘모두도서관’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기존 주민과 이주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한국어 도서 약 1만권과 베트남, 중국, 일본, 몽골, 캄보디아, 필리핀 등 22개국 나라의 책 6000여권이 있어 책을 통해 다양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 사람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주여성들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차별을 겪을 때 상처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것들을 고쳐나가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각 나라의 동화를 들려주거나 극으로 보여주는 등 도서관에서 행사를 자주 열었죠. ‘다국의 날’이라고 해서 하루 동안 그 나라 놀이도 해보고 음식 맛도 보고 의상도 입어보는 등 여러 가지 문화 활동을 이주민들 중심으로 진행했어요.”
“요즘에는 못하고 있지만 매년 ‘다문화 축제’라는 것도 열어요. 대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그 곳에서 나라마다 하나씩 부스를 설치해 운영하는 것이죠. 아이들은 각 부스에 들어와 여권에 스탬프를 찍으며 여러 나라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예요. 그런 행사를 하고 나면 몰랐던 문화를 알게 돼 친근함이 더욱 강해지죠.”
다문화도서관, 내년에 문 닫을 위기… “후원 절실”
30년 가까이 활동해온 ‘푸른사람들’은 현재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상태다. 도서관을 설립·운영하는 데 도움을 줬던 기업의 부도로 지원금이 끊긴 데 이어 5년 간 무상으로 이용했던 도서관 공간마저 계약이 내년까지라 그 전에 새로운 장소를 찾아야 한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시민들의 후원금도 줄어든 상태이기에 서 대표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5년의 기한을 두고 도서관을 임대료 없이 무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후 대안은 없어요. 지자체나 관계 부처에 노크했지만 민간도서관들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지원하는 데가 없더라고요. 안타깝지만 문을 닫아야 하는 거예요. ‘모두도서관’은 다문화라고 하는 것들이 도서관과 어떻게 접목해야 하는지 사례로서 알려주는 역할을 했거든요. 운영을 할 수 없어 문을 닫게 된다면 국가로서도 우리 사회로서도 손실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다문화사회는 앞으로 확장됐으면 됐지 축소되진 않잖아요. 우리 사회가 성숙한 시민사회로서 혹은 다문화사회로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이런 과정들을 지혜롭게 넘겼으면 좋겠는데, 민간단체들의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고야 마는 상황이 많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끝으로 ‘푸른사람들’은 현재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꼽았다. 그 다음으론 성인의 기초교육에 대한 국가 지원을 강화하는 ‘기초교육 보장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제시했다. 또한 다양성을 포용하는 교육프로그램들을 지역주민들이 많이 접할 수 있도록 나눔과 돌봄을 계속할 계획이다.
“사실 어머니학교도 문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법도 만들어지고 국가의 지원도 생기고 성장했지만 아직은 불완전해요.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성인의 기초교육에 대해 국가가 지원하는 ‘기초교육 보장법’을 법적으로 마련하고 있거든요. 교육권 차원에서 배움의 기회를 놓치신 분들에 대해 국가가 당연히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50대에는 ‘50플러스센터’ ‘인생이모작지원센터’ 등 지원 프로그램이 많은데 그보다 윗세대인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관은 없어요. 그런 분들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방안들을 하나씩 탐색하고 있죠.”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손잡고 나가는 ‘푸른사람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삭막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푸른사람들’을 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한줄기 희망이 느껴졌다.
[윤승준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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