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KRW)가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1200원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급속도로 치솟으면서 1330원마저 뚫었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중국의 경기 둔화 등 대외적인 악재가 원화 가치를 떨어뜨린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미국 국채 금리 상승 등 달러화 강세 요인이 남아 있어 당분간 환율이 1300원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15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24.9원)보다 6.0원 오른 1330.9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5월18일(1334.2원) 이후 석 달 만에 최고치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통화긴축 종료 기대로 7월 중순까지 1200원대에서 하향 안정세를 보였지만 월말부터 점차 오르면서 2일 1300원대·8일 1310원대·11일 1320원대를 연거푸 넘어섰다.
환율 급등세는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1일(현지시각)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추면서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상승한 결과로 풀이된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11일 기준 4.158%로 이달 들어 0.2%p 올랐다. 일반적으로 미 국채 금리가 오르면 다른 국가의 채권에 비해 미 국채의 매력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달러 수요가 늘어나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
높은 생산자물가도 달러 강세를 이끌었다. 11일(현지시각) 미국 노동부 고용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의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월 대비 0.8%·전월 대비 0.3% 상승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0.7%(전년 대비)·0.2%(전월 대비)에서 각각 0.1%p 높은 수준이다.
PPI는 1~2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쳐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수 있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동월 대비 3.2% 오르면서 6월 CPI 상승률(3.0%)보다 높이 뛰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중물가 현상(물가상승률 목표치 상회)이 상당기간 이어질 수 있는 리스크는 여전하다”며 “중물가 리스크를 크게 해소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4%대를 유지 중인 10년 국채 금리의 하방 경직성 강화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동반 약세(환율 상승)도 원화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위안화와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달러 가치가 상대적으로 강해지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도 올라간다. 11일 달러화 대비 위안화는 전날보다 0.28%, 달러화 대비 엔화는 0.16% 각각 상승했다.
특히 중국은 경기 부진이 위안화 약세를 키우고 있다. 중국의 7월 수출액은 2817억6000만 달러(약 369조7000억 원)로 전년동기 대비 14.5% 줄었다. 이는 2020년 2월 이후 41개월 만의 최대 하락폭이다.
7월 CPI 상승률(-0.3%)도 2년 5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진 상태다. 여기에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도 위안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환율 상승은 금융시장의 위험 회피 분위기 형성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며 “미국 중소형 은행 10곳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고 중국의 수출입지표가 부진하게 발표되는 등 여러 악재들이 결부돼 안전통화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달러·원 환율 옵션 변동성이 높아지고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 흐름이 전개됐다”고 분석했다.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 4.1% 하락… 주요국 중 가장 커
문제는 원화 가치가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 하락폭이 유독 컸다는 점이다. 7월31일 종가와 8월11일 종가를 기준으로 미 달러화 대비 주요국 통화를 비교한 결과 이 기간 원화 가치는 4.1%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했다.
유로화(-0.45%)·파운드화(-1.1%)·엔화(-1.88%)·캐나다 달러화(-1.9%) 등 주요국 통화의 하락폭이 0~1%대에 그친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인도(-0.77%)·브라질(-3.83%)·인도네시아(-0.9%)·멕시코(-1.55%)·튀르기예(-0.4%)·베트남(-0.3%)·태국(-2.51%) 등 신흥국의 하락폭보다도 컸다. GDP 상위 20위 안에 드는 국가 중 한국보다 통화가치 하락폭이 큰 곳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8.55%)뿐이었다.
‘나홀로 약세’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수출액은 503억3000만 달러로 전년동월 대비 16.5% 줄었다. 작년 10월부터 10개월 연속 감소세다. 누적 무역수지 적자도 278억 달러에 달한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1% 초반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한·미 금리 차도 역대 최대로 벌어져 원화 강세로 전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 연구원은 “(중국의 경우) 디플레이션 우려와 완화정책 기대감이 부각되고 있지만 중국 국유은행들의 위안화 매수, 경기 저점 인식 등으로 위안화 약세는 진정되고 박스권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원화도 고유 펀더멘털에 연동될 가능성이 높은데 하반기 한국 경제가 대외부문을 중심으로 개선되면서 원화 강세를 지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이달 25일 열릴 미 연준의 ‘잭슨홀 미팅’ 전까지 원·달러 환율이 1300~40원대 ‘박스권’ 등락을 보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박 연구원은 “대내외적으로 원·달러 환율 추가 상승을 제어해줄 만한 재료가 부재한 상황에서 단기 급등 정도가 추가 상승폭을 제한할 수 있지만 하락 요인은 아니니라고 본다”며 “단기적으로 달러화보다 엔화·위안화 안정이 일단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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