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10-04 13:20
뉴스 > 연재기획
[김태산의 울림] 아무래도 나는 먹을 복이 지지리도 없나 보다

김태산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05 06:31:10
▲ 김태산 前체코주재북한무역 대표·남북함께국민연합 상임대표
이제는 볼품없는 늙은이지만 북한에서 50년을 살아 보았고, 한국에서도 20년을 넘게 살아 본 나는 어찌 보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양극단 사회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나는 1950년대 초에 북한에서 태어났다. 참으로 배고픈 시절이었다. 물론 국가에서 배급은 주었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모자라서 하루 한 끼는 굶거나 죽으로 살아야 했다. 영아 때는 100g, 유치원 때는 300g, 인민학교 때는 400g, 중학교 때는 500g씩 쌀 배급을 받았지만 항상 배가 고팠다.
 
지금의 한국 같으면 하루에 300~400g의 쌀이면 어른도 배불리 먹고 남을 양이다. 그러나 기름과 고기·간식은 구경조차 못하고 밥만 먹으니까 턱없이 모자라서 전 인민이 배가 고파 허덕였다. 국가에서 쌀과 함께 공급해주는 것은 약간의 간장·된장·소금이 전부였다. 기름은 구경도 못 했고 고기는 1월1일과 8·15 명절에만 몇 점 먹어 보는 것이 전부였다.
 
해마다 봄철만 되면 농장원 세대들은 식량이 떨어져 굶어서 일을 못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국가에서는 가을에 갚으라며 ‘대여곡’이라는 것을 풀어 주곤 했다. 그래도 노동자에게는 한 달에 두 번씩 배급을 주니까 죽을 먹더라도 굶어서 일을 못 나가는 사람은 없었지만, 학교에는 점심을 못 싸 오는 학생이 부지기수였다.
 
봄과 여름엔 나무껍질과 풀을, 가을과 겨울에는 도토리 섞은 밥과 멀건 쌀죽을 먹던 게 지금 생각해도 진저리가 쳐진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린 시절의 소원이 무엇이었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하얀 이(쌀)밥을 배불리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1960~70년대 초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더 잘살았다고 한다. 북한을 너무도 모르는 소리다. 이런 사람들은 당시 북한의 국민총생산(GNP)이 한국보다 3배 이상 높았다는 수치를 증거로 내민다.
 
물론 그 수치가 틀린 건 아니다. 당시 북한은 전기가 충분했고 공업생산량이 남한보다 훨씬 앞섰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숫자는 숫자에 불과할 뿐 인민이 먹을 쌀과 기름과 고기와 채소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김일성은 국민을 짐승같이 통제하기 위해 배급 제도를 실시하면서 한 톨의 식량도 시장에서 거래하지 못하게 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전쟁 준비를 하느라 전국에 수많은 군수공장과 군사 연구소를 세우고 군수품 생산과 핵무기 연구에 나라의 돈과 자산 거의 전부를 탕진했다.
 
그렇게 해서 1960년대에 한국에서는 꿈도 못 꾸던 자동차와 트랙터·자동소총과 각종 대포·방사포·탱크와 잠수함 그리고 각종 탄약과 포탄을 대량 생산했다. 그래서 국민총생산액은 한국보다 3배 이상 높았지만 인민의 배는 여전히 고팠던 것이다.
 
물론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몇 년간은 바다에서 물고기도 많이 잡히고, 상점에 계란과 사탕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쌀과 기름과 고기는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마저도 10년도 못 가 사라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 기관에서 일하면서부터 배고픔과 강냉이밥은 면했지만 우유와 커피를 처음 마셔 본 것은 1980년대 중반 외국 출장을 나가서였다. 북한에서는 우유나 커피를 본 적도 없다. 초콜릿이나 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북한이 더 잘살았다고 우긴다. 물론 한국도 못 살았겠지만 북한은 지금까지 잘살아 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나는 배고파서 국민이 굶어 죽는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왔다. 상상조차도 못 했던 세상이다. 쌀과 고기·기름·간장·된장은 물론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수백 가지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골라먹을 수 있다.
 
나는 나의 말년은 운이 좋아서 초년과 다르게 먹을 복이 터진 줄 알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도 아니었다. 북한처럼 감시와 통제가 없고 생활총화도 강연회도 학습도 없고, 마음이 편하니까 먹지 않아도 살이 찐다. 먹으면 먹는 것만큼 돼지처럼 두룩두룩 살만 찐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는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하루에 한두 끼만 먹는다. 초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점심을 굶고 하루 한 끼는 멀건 죽으로 살았는데, 말년에는 너무 살이 쪄서 하루 한두 끼만 먹어야 하는 나의 운명도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큰 쌀독에 빠져서도 마음껏 먹을 수 없으니 아무리 봐도 나의 한 생은 먹을 복이 없는가 보다.
 
그러나, 어릴 때는 배고프면 서러웠지만 지금은 배가 고파도 행복하다. 이 세상 먹을 것이 모두 내 것이니 말이다. 단 한 가지 고민은 아직도 굶주리는 북한의 내 형제들과 이 행복을 같이하지 못하는 것….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늘도 나는 굶주리는 북한의 내 형제들에게도 한국과 같은 풍요와 자유를 내려 주십사고 하늘에 빈다. 
 
광고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3
좋아요
5
감동이에요
1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1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79,656 ▶
어제 140,481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