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소. 당신이 기쁘고 담대한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펼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 부부가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말한 그 계획에 따라 나는 영사(미국 주재 소련 영사)를 만나고 왔어요.… 사랑의 키스를 담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위 글은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그의 연인 마르가리타 코넨코바(1895~1980)에게 보낸 독일어 편지의 일부이다. 이들의 불륜관계는 1998년 경매업체 소더비가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아인슈타인이 마르가리타에게 보낸 편지 9통과 사진을 경매하면서 밝혀졌다. 아인슈타인이 10년간 밀애를 나누던 연인은 놀랍게도 소련연방 정보국(KGB의 전신) 요원 마르가리타였다. 그녀의 코드명은 ‘루카스’였다.
마르가리타(결혼 전 성은 보론초바)는 러시아의 변호사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부유한 가정에서 교육을 잘 받은 덕분에 영어·독일어·프랑스어에도 능통했다. 그녀는 사라풀의 여학교를 졸업한 후 모스크바의 마담 폴토라츠키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아름답고 청초한 외모에 지적 매력까지 겸비한 그녀는 모스크바 사교계를 휘어잡았다. 당시 러시아 유명 인사인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등과 교류했으나 1922년 ‘러시아의 로뎅’이라 불리는 유명 조각가 세르게이 코넨코프와 결혼했다.
1923년 소련 볼세비키 정부는 뉴욕에서 러시아(소련) 미술 전시회를 개최하고 이를 계기로 러시아 문화를 선전하기 위해 대표단을 보냈는데, 여기에 코넨코프 부부도 포함되었다. 단기 체류 예정이었던 이들 부부는 소련 정부의 승인하에 미국에 장기 체류하게 되었다. 이때 마르가리타는 미국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암약 중이던 소련 정보요원 예리자베타 자루비나에게 영입되어 스파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소련의 핵심 목표는 미국 내 과학자들을 포섭해 핵기술 정보를 빼내는 것이었다.
마르가리타는 뛰어난 영어 실력에 세련된 미모와 매너로 뉴욕 상류 사회를 쉽게 정복했다. 남편이 조각품을 만드는 동안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작업실에 살롱을 차려 저명한 미국 정치인과 그 아내들을 초대해 접대했다. 그녀는 백악관에까지 초대받았고 영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와도 친교를 나누었다.
1935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코넨코프에게 아인슈타인의 청동 흉상 제작을 의뢰했다. 아인슈타인은 흉상의 모델로 코넨코프의 작업실에 드나들다가 그의 부인 마르가리타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코넨코프가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아인슈타인은 마르가리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졌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려운 상대성이론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아인슈타인에게 서서히 빠져들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56세, 마가리타는 39세였다. 남편은 마르가리타와 아인슈타인이 함께 있는 모습을 그려 줬는데 아인슈타인은 즉석에서 ‘알마(Alma)’라는 제목을 붙였다. 알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마가리타의 첫 음절을 딴 것이었다.
결국 둘은 사랑에 빠져들었다. 아인슈타인은 마르가리타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1939년 그녀가 심각한 병을 걸렸다는 의사의 가짜 소견서까지 코넨코프에게 보내 공기가 맑고 경치 좋은 새러락 호수 부근에서 요양시킬 것을 제안했다. 결국 코넨코프가 이를 허락했고 둘은 새러락 별장에서 밀애를 즐겼다.
마르가리타는 미국의 원자폭탄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을 매혹했다. 1936년 프린스턴에서 그녀는 아인슈타인의 소개로 영향력 있는 핵과학자 오펜하이머와 교류하며 그에게 좌익 성향의 과학자들을 고용하도록 설득했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도 전에 소련에 미국의 핵무기 개발은 오펜하이머의 지휘하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렸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지득한 핵기술 정보는 소련으로 고스란히 흘러갔다.
1945년 미국이 첫 번째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관련 정보도 즉시 소련에 보내졌다. 그해 8월 마르가리타는 아인슈타인과 새러락 별장으로 마지막 여행을 가서 자신이 소련 스파이임을 밝혔다. 아인슈타인과 마르가리타는 서로에게 매우 솔직했고 사랑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결국 마르가리타를 돕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아인슈타인에게 뉴욕 주재 소련영사관 부영사(스파이 책임자)인 파벨 미하일로프를 만날 것을 부탁하고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아인슈타인은 미국을 배반하고 소련을 위해 스파이 협력자가 되었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8월30일 소련은 마르가리타를 즉각 소환했다. 그녀는 소련 친척을 방문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을 떠났다. 아인슈타인은 그녀에게 작별 선물로 금시계를 주었다. 마르가리타 부부는 미국에서 보낸 22년 세월 동안 많은 재산을 얻었고 이삿짐을 소련으로 운송하기 위해 증기선 전체를 빌려야 했다.
마르가리타는 모스크바에 도착한 직후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서신을 받았다. 이후 두 연인의 서신 교환은 1955년 봄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들 부부는 소련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을 받고 호화주택과 시골 별장도 얻었다. 1971년 남편이 죽었고 마르가리타는 1980년 모스크바에서 쓸쓸하게 사망했다.
그녀의 스파이 활동 자료는 소련 KGB(국가보안위원회) 비밀자료실에 있어 그동안 비밀로 묻혀 있었다. 그러나 1998년 경매를 통해 두 연인 간의 편지가 공개되고, KGB의 비밀문서가 일부 공개되면서 그들의 불륜이 세상에 알려졌다.
작가 알렉산더 겔만은 이를 소재로 ‘알마르’라는 희곡을 썼는데 이는 ‘아인슈타인과 마르가리타’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2022년 6월에 처음으로 공연되었고 후에 인기리에 전 세계를 순회 공연했다. 또한 러시아 작가 유리 수슈코는 소설 ‘마르가리타 코넨코바,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사랑’(2024년)을 출판했다. 묻힐 뻔한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10년간 불륜 이야기가 아름다운 ‘세기의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단순한 미인계 이상의 사랑 이야기가 스파이 세계를 떠나 공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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