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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의 스파이 세계] <55> 美 CIA(중앙정보국)의 ‘추모 별’
직무 수행 중 목숨 잃은 CIA 요원들 기리는 추모 공간
현재 추모 벽에는 140개의 ‘별(star)’이 새겨져 있어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19 00:02:55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미국 버지니아주(州) 랭글리에 위치한 CIA(중앙정보국) 본부 청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이 로비 북쪽에 있는 ‘추모 벽(Memorial Wall)’이다. 흰색 대리석 벽에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CIA 요원을 기리며’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벽 왼쪽에는 미국 국기가 오른쪽에는 CIA 기(旗)가 있다. 
 
이곳은 직무 수행 중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CIA 요원들을 기리는 추모 공간이다. 여기에 새겨진 별(가로 2¼인치·세로 2¼인치·깊이 0.5인치)은 직무 수행 중 사망한 요원을 상징한다. 추모벽 옆에는 ‘명예의 책(Book of Honor)’이라고 불리는 스테인리스 스틸 액자가 전시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사망 연도별로 정렬된 별과 직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처음으로 추모 벽이 만들어 진 것은 윌리엄 콜비 CIA 국장 재임 시절인 1974년 7월이다. 당시 31개 별을 새겼는데 헌정식도 추모 팡파르로 울리지 않은 채 조용히 설치되었다. 이후 무려 13년 동안 아무런 추모 행사가 없다가 한 요원의 제안에 따라 1987년에야 CIA 국장과 고위 CIA 관계자 등만 참석한 채 첫 번째 추모식이 열렸다. 이후 사망한 요원의 직계 가족만 추모 행사에 초대되었고 1990년부터는 CIA 국장의 주관하에 동료들과 일반 가족도 초대되었다. 1995년부터 매년 별의 이름을 동료와 가족들에게 큰 소리로 읽어 주는 추모식을 개최해 오고 있다. 이제 추모식은 CIA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 미 중앙정보국(CIA) 본부 청사 로비의 ‘추모 벽(Memorial Wall)’.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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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벽에 별을 새기려면 CIA 내 ‘명예 및 공로상 수상위원회(HMAB)’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선정 기준 충족 여부에 대한 심사를 거쳐 CIA 국장에게 추천되며 승인을 받으면 새로운 별이 추가된다. 처음에는 해외에서 작전 중에 사망한 요원만을 기렸으나 차츰 직무 수행 중 사망한 요원으로 대상이 확대되었다. 2009년 레온 E. 파네타 국장 시절부터는 모든 가족에게 ‘추모 별’의 복제품을 헌정하며 그들의 희생을 기리고 있다.
 
현재 추모 벽에는 140개의 ‘별(star)’이 새겨져 있다. CIA는 106명의 이름을 공개했으나 나머지 34명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고 비밀로 묻어 두고 있다. 국익을 위해 사망한 이후에도  그들의 이름과 활동을 공개해서는 안 되는 냉혹한 스파이 세계의 일면을 보여준다.
 
추모 벽에 걸린 첫 번째 별은 더글러스 매키어넌(Douglas S. Mackiernan)이다. CIA가 1997년 발표한 그의 활동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1913년 생으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스페인어·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 및 기상학에 능통했다. 1942년 군에 입대하여 2년 반 동안 중국 신장성의 수도인 우루무치에 있는 제10 기상대대에서 복무했다. 복무 중 1946년 CIA의 전신인 전략정보국(OSS)에 발탁되어 비밀 요원으로 이 지역에서 소련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정보 작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소련은 우루무치에 영사관과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었는데 원자폭탄의 원료인 우라늄을 비밀리에 채굴하고 있었다. 그는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 정보와 함께 중국의 원자폭탄 연구 정보도 추적하고 있었다.
 
매키어넌은 우루무치 주재 미국 영사관의 참사로 위장하여 현지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소련과 중국 공산당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1947년 여름 CIA가 창설되었을 때 그는 자동적으로 CIA 소속이 되었다. 그는 우루무치의 부영사(CIA 지부장)로 승진해 그 지역 민족 지도자들과 교류하며 소련의 원자 폭탄 실험 등을 감지하기 위해 공군의 기압·지진·방사선 측정 장비를 설치했다. 
 
1949년 여름 신장의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을 때 CIA 본부에서는 철수할 것을 권했으나 그는 끝까지 남아 임무를 수행했다. 그해 9월 말 신장성 정부가 중국 공산당에 점령되자 암호화 장비를 파괴하고 탈출 길에 올랐다. 그리고 1950년 3월에야 그와 일행 3명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티베트 영토에 접근했다.
 
1950년 4월29일 아침 매키어넌과 그의 일행은 티베트 유목민 가족을 우연히 만나 합류했는데 갑자기 군복을 입은 무장한 티베트인 6명이 나타나 교전을 벌였고 매키어넌과 그의 일행 중 두 명이 죽었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매키어넌과 그의 동료의 시체는 티베트 정부에 의해 그 자리에 묻혔다. 그의 죽음은 비밀에 부쳐졌고 1974년 CIA 추모 벽에 최초로 별이 새겨졌다. 
 
▲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위치한 CIA 청사. 필자제공
 
 
그의 업적은 1997년에야 추모식을 통해 어렴풋이 소개되었다. 조지 J. 테넷 CIA 국장 직무 대리는 “그는 그 벽의 첫 번째 별이고, 그의 이름이 있어야 할 책의 공간은 비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고 밝혔다. 그의 이름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2006년에 CIA ‘명예의 책(Book of Honor)’에 공식적으로 등재되었다.
 
 
▲ 미 중앙정보국(CIA) 본부 청사 로비에 있는 ‘추모 벽(Memorial Wall)’의 별. 필자 제공
 
 
1965년 3월30일 베트남 사이공 주재 미국 대사관에 대한 베트콩의 차량 폭탄 공격으로 CIA 요원 바바라 아네트 로빈스(Barbara Annette Robbins·당시 22세)가 사망했다. 그녀는 CIA 역사상 작전 중 사망한 최초의 여성 요원이었고 최연소 요원이었다. 그녀는 1974년에 31번째 별에 올랐지만 ‘명예의 책’에는 2011년 5월에야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로빈스는 사망 후 베트남 외무장관으로부터 명예훈장 1급 훈장을 받았다.
 
CIA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CIA의 영웅들’이란 메뉴에 37명의 별에 대한 간략한 업적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본지 스파이 세계 제45회(2024.12.14.)에 게재된 ‘버지니아 홀’ 등 CIA 영웅들의 이야기가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 국정원에도 미 CIA의 ‘추모 별’처럼 정보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희생한 19명의 별들이 새겨져 있다. “소리 없이 별로 남은 그대들의 길을 좇아 조국을 지키는 데 헌신하리라”는 문장과 함께! 이름도 공개되지 않는 그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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