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476년, 불과 15세의 로물루스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게 되는데 곧이어 발생한 게르만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의 반란에 의해 서로마 제국이 단기간에 멸망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다.
강대했던 로마는 왜 그리 허망하게 멸망했을까? 근본 원인은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병역 의무를 가진 자유시민들이 경제력을 상실하고 자발적 노예 또는 소작농으로 바뀌면서 병력 자원이 감소해 이를 용병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프리고진이 이끄는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의 돌발 행동 이후 러시아의 권력 구도 및 이번 전쟁의 향방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과 서방의 정보기관들도 프리고진의 행보를 예측하기는 했으나 하루 만에 끝나리라고 분석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당초 프리고진은 왜 그러한 선택을 하였을까? 여러 가지 주장과 분석이 나오고 있으나 명쾌하게 이유를 속단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듯하다. 일각에서는 과도하게 팽창된 바그너 그룹을 와해시키고 흡수함으로써 ‘수익형’ 용병사업을 차지하려는 현 군 수뇌부의 욕심으로 보기도 한다. 이미 러시아 정부는 바그너 그룹의 고수익형 해외 용병사업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또 러시아 정부·군·정보기관들 간의 권력 암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카지노 사업가 출신 프리고진은 그의 재산·가족·측근 세력의 보존을 위한 베팅을 해야만 했다. 더욱이 러시아 정부의 자금이 끊기고 재산이 동결될 경우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된 용병들이 즉각 돌변해 자신을 붙잡아 푸틴에게 바치게 될 수도 있었다. ‘용병은 신념이 아닌 돈으로 움직이는 존재’임을 잘 알기에 말이다.
그러므로 끝으로 달려가는 상황 속에서 명분과 돌파구가 필요했던 그에겐 무력시위를 통해 러시아 국민에게 존재감을 과시하면서도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일부 군사전문가는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로 진격해 교전을 하면 러시아 정규군이 크게 밀릴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내전 확산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러나 당초 프리고진은 수개월 전부터 군수 보급 탄약 및 포탄 지원이 안 되고 있음을 수없이 강조한 상태였다.
전투는 군수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도 내전으로 비춰질 경우 국민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교전을 최대한 피하되 푸틴의 허수아비인 벨라루스 대통령을 내세워 프리고진과 중재하는 형태를 취하면서 그의 재산과 가족의 안전을 지켜주는 수준에서 바그너 그룹의 해체 등을 독촉한 것으로 유추된다.
사실 프리고진은 푸틴과 카지노 사업을 통해 유대관계를 갖기 시작했으며 푸틴의 비자금 형성에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에 그 역시 이러한 조커 카드를 활용해 승승장구했을 것이다.
다만 그가 장기간 전쟁터에 있는 동안 쇼이구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들과 정적(政敵)들이 푸틴을 감언이설로 현혹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며 이는 자수성가형 ‘유대인’ 출신 사업가 프리고진에게 큰 벽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프리고진이 이번 전쟁으로 유명해졌으나 러시아의 패권을 좌지우지하는 실질적 세력은 석유·가스 등 천연자원을 장악하고 있는 ‘에너지 마피아’ 세력이다. 프리고진은 그들에 비해 그리 큰 세력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프리고진을 활용하면 러시아 정부의 부정부패를 세상을 알릴 기회가 될 수 있기에 암살 위협도 받는 그의 신변을 서방 정보기관들이 나서 보호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프리고진의 퇴장은 이번 ‘전쟁의 향방’은 물론 ‘서방국가들의 셈법’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함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실직한 바그너 그룹의 용병들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일부는 러시아 정규군으로 편입되며 일부는 ‘자유러시아군단’으로, 또 일부는 우크라이나 ‘국제군단’으로 들어가 러시아를 향해 총부리를 돌릴 수도 있다. 결국 프리고진이 던진 돌은 러시아에게 정치적·군사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모든 독재자들이 그러했듯 푸틴도 몰락의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장 관심 가져야 할 사항은 다름 아닌 ‘누가 전쟁을 중단시키는가’다. 오직 천연가스의 안정적 수급만이 목적인 유럽은 역량이 부족하며 미국도 민주당 정권이 불안정해 한계가 있다. 겉과 속이 다른 미국 민주당과 중국 공산당의 밀월 속에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가능성도 미지수다.
현실적으로는 내년 미국 중간선거를 통해 공화당이 재집권할 시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그 이전까지 이 상태가 유지된 채로 불필요한 소모전이 지속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제 우리는 더욱 복잡해진 국제관계의 셈법 속에서 대한민국의 확실한 안보와 국익 보장을 위한 가장 합리적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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