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한동안 나를 북한의 실태로 인도했다. 서울까지 날아온 ‘오물풍선’에 관심을 가진 이후의 일이다. 전에도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지만 외면한 이유는 보고난 후의 괴로움 때문이었다. 북한의 3대 권력 세습자인 젊은 김정은은 최악의 통치를 선보이고 있다. 권력을 잡자마자 보여 준 폭압과 공포의 실태는 이미 알려져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괴한 독재자의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의 추악함을 싸매어 감추어도 소용없는 것은 그의 백성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대한민국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탈북은 귀순을 의미했고 북한 체제에서 살아가기 힘든 일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국한된 일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각계각층 연령을 막론하고 정든 고향을 등진다. 그들의 동기는 단순하다. 그곳에서의 삶이 인간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적 결핍과 핍박을 견디기 힘든 것도 있고 정신적 괴로움을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심정,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거나 탈북하다 잡혀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각오로 그들은 국경을 넘는다.
독재자를 지근에서 경호한 군인이나 기쁨조에 뽑혀 성 노리개로 아픔을 겪은 젊은 여성, 감방에서 사형을 집행하던 간수나 특권층을 진료하던 의사까지… 이들 모두가 인간으로서 살 곳이 못 된다는 아픈 판단을 딛고 대한민국으로 향한다. 그렇게 하여 탈북에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신념과 사명이 생긴다. 북한의 인권 실상을 전 세계에 알려 폭압에 시달리는 동포를 구하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이다.
그들은 고향 땅을 향해 풍선을 날려 대한민국의 실정을 알리고, 풍선에 달린 USB 속의 자유 대한민국의 음악과 드라마는 북녘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얼마 전 북한에서는 대한민국 드라마를 보았다는 이유로 중학생 30여 명이 공개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국민을 압제하고 감시하는 나라, 국민을 굶기고 착취하는 나라! 도대체 이 나라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나라는 언제까지 존속될 것인가.
정치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눈으로 보자. 그는 김정은을 ‘참주(僭主)’로 파악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참주는 억압받는 가난한 시민 편에 서서 민중의 지지를 얻어 ‘비합법적 수단으로 권력을 잡은 자’이다. 초기 북한의 상황은 그랬다. 김일성은 인민의 아버지라는 미명하에 수령이 되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주정(僭主政)’을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듯 국가를 통치하는 1인 지배체제라고 했다(물론 참주라기보다 정치가처럼 온건하게 통치한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경우와 같은 예외도 있다).
왕과 참주의 차이는 무엇인가. 왕은 명예와 명성을 중시하지만 돈과 쾌락을 추구하는 참주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왕의 백성은 자진하여 왕을 따르고 참주의 백성은 어쩔 수 없이 참주에게 복종한다. 대중을 믿지 못하는 참주는 그들에게서 무기를 빼앗고 도성 밖으로 내쫓는다. 나아가 정권의 장애물인 경쟁자는 철저하게 파멸시킨다.
참주는 어떻게 권력을 유지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주가 시민들을 분열시켜 서로 불신하게 만든다고 한다. 시민들이 친하게 지내면 독재에 반항할 수 있으므로 공동 식사와 동아리 모임 등은 금지되고 토론도 억제된다. 비밀경찰을 만들어 시민을 감시하여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시민을 가난하게 만들어 입에 풀칠하느라 반항할 여지가 없게 한다. 신전 건설, 대형 기념물 건축과 같은 큰 공사나 큰 축제를 벌인다. 전쟁을 도구로 불안을 조성해서 강력한 지도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참주 자신의 품위 있는 처신과 탁월한 군사적 능력도 필수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짚어 낸 그 실상이 바로 지금 북한에 존재한다. ‘참주 김정은’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젊은 여성들을 도구로 쓰고 휴지처럼 내다 버린다. 북한 주민에게는 자연스레 ‘인권’이 없다. 백성은 굶어 죽는데 자신은 호화와 사치에 탐닉하는 참주 김정은은 거리낌 없이 백성을 괴롭히고 착취한다.
참주가 보기에 백성은 그저 ‘노예’일 뿐이다. 참주 김정은은 자신의 체제 유지를 위해 상호 감시와 비판의 수위를 높인다. 친하게 지내는 탈북인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북한에서 이루어진 ‘생활 총화’였다. 생활 총화는 상호 감시와 비판 시스템이다. 북한에선 초등학교 아이들조차 친구를 의무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그들은 매일매일 행해지는 상호 비판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고, 대한민국에 와서 제일 좋은 일은 친구를 비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역사상 유례없는 3대 참주다. 그가 통치자가 되기까지 선대 조상들이 갈고닦은 참주 기술이 전수되었다. 그래서 더 세련되고 더 포악하게 노련한 참주정을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리스의 참주정은 3대까지 이어지지 못했음이 사실이다. 북한 동포의 삶이 ‘노예 80년’에 육박하고 있다. 그들의 피눈물을 누가 닦아 줄 것인가. 그들의 소중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가 찾아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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