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180조 원에 육박했던 국내주식 운용 규모는 3년 반 만에 150조 원대로 급감했다. 이 기간 해외주식 운용액이 190조 원에서 390조 원으로 두 배 이상 커진 것과 상반된다. 낮은 수익률에 따른 기금 고갈 단축을 막으려는 조치이긴 하나 연초부터 정부에서 주창하는 ‘밸류업 프로그램’과 어긋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스카이데일리가 24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현황을 확인한 결과 6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투자한 국내주식 자산규모는 158조724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체자산(1147조0360억 원)의 13.8%를 차지하는 규모다. 작년 말 14.3%(148조420억 원)였던 것과 비교해 0.5%p 떨어졌다.
해외주식 자산규모는 390조8370억 원으로 국내주식보다 2.5배 가까이 컸다. 전체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말 30.9%(320조3610억 원)에서 34.1%로 반년 만에 3.2%p 올라갔다.
4년 전만 해도 국내·해외시장 간 격차는 크지 않았다. 2020년 말 국내주식 규모는 176조6960억 원, 해외주식은 192조7520억 원이었다. 2021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2020년 말과 비교해 국내주식은 10.2%(17조9720억 원) 줄어든 반면 해외주식은 102.8%(198조850억 원) 늘었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축소에 나선 건 수익률이 저조해서다. 코스피 지수는 2021년 3000포인트대였으나 23일 기준으로 2618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국내주식 연 환산 수익률은 22.12%로 해외주식 수익률(23.89%)을 밑돌았다.
198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장기 수익률로 비교해도 국내주식 6.53%, 해외주식 11.04%로 차이가 컸다. 국민연금이 예상한 올해 국내주식 수익률도 8.61%로 해외주식(20.47%)보다 낮고 금융부문 평균(9.73%)에도 못 미친다.
기금 고갈을 막아야 하는 국민연금으로선 해외주식 확대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은 2021년 4000선을 돌파했지만 3년 만에 5700선을 넘어섰다. 일본 닛케이지수도 2021년 3000선을 밑돌았으나 3800선을 돌파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했는지 국민연금은 5월 말 14.2%인 국내주식 비중을 2029년까지 13%로 줄이는 내용의 2025~2029년 중기자산배분안을 채택했다. 주식 등 해외투자는 2028년까지 60%로 확대한다.
다만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부작용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투자액이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시가총액(2696조996억 원)의 5.9%(6월 말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하락장을 주도하기도 했다. 올 1월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 등이 유가증권시장에서 한 달간 7152억 원을 순매도했을 때 코스피 지수는 6.0% 하락했다.
정부에서 연초부터 추진하고 있는 자본시장 개혁과 역행할 수 있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올 1월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계획을 처음 언급한 걸 시작으로 정부는 저평가된 국내 주식시장을 부양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상장사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유도하고 연기금과 자산운용사에 국내주식 투자를 확대할 것을 거듭 요구하기도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2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토론회’에서 “연기금과 운용사는 자본시장의 투자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장기투자 주체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일본 공적연금(GPIF)의 자국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확대가 시장의 저평가를 해소하고 일본 밸류업 정책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이 지난달 발표한 ‘일본 자본시장 개혁의 성과 동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GPIF의 전체 투자자산군 중에서 일본 주식 보유 비중은 2010년 말 11.5%(13조4000억 엔)에서 지난해 말 24.7%(55조8000억 엔)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도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아직 밸류업 계획 기업 투자에 소극적이다. 한국거래소에서 ‘기업가치 제고 계획(자율공시)’을 공시한 12개 상장사에 대한 연기금 등의 거래실적을 확인한 결과, 연기금 등은 358억 원(각 사 공시일 대비 23일 종가 기준)을 순매도했다. 현대차·신한지주 등 6곳을 팔아치웠다. 에스트래픽·디케이앤디 2사에 대해서는 거래가 없었다.
이제 관심은 ‘KRX 코리아 밸류업 지수’ 공개 후 국민연금의 행보에 쏠리고 있다. 자본시장 개혁 성공으로 수익률이 오른다면 국내주식 비중을 늘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12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토론회에서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한국거래소에서 발표 예정인 밸류업 지수가 국민연금기금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이다”며 “자본시장 선진화와 관련해 다각적인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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