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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67] 선한 기업인
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20 06:30:22
 
 
아버지 말씀이 끝나자 어머니와 승호·승연은 서로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얼굴 가득 미소가 담겼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평소 아버지의 생활 철학이 근로자들을 대하는 마음에도 담겨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아버지의 가치관은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정신이었다. 아버지는 평생 사치할 줄 몰랐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었고 겸손했다. 아버지는 할 수 없이 할아버지 가업을 이어받아 사업을 진행하고 있긴 해도 아들 승호한테는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아들에게 네 갈길 스스로 개척하라면서.
 
승연은 자기 아버지가 태주한테 들었던 악덕 기업주가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그런 악덕 기업주를 강도 취급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승호도 으쓱했는지 몸을 승연 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 같은 사장님만 계시면 노조가 필요 없을 텐데 말이지, 안 그래? 아버진 직원 기숙사 만들어 주는 게 목표라잖아.”
 
아버지는 항상 밥은 반 공기만 먹는 대신 국그릇은 다 비웠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서 식탁 모서리를 손으로 짚으며 승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뗐다.
 
“네 동기 동생이란 애, 미싱 경력 얼마나 됐니? 동생 이력서나 하나 받아 두라 해!”
 
승연이 놀라 입을 벌렸다. 지어낸 얘긴데 이력서 받아 두라니. 승연은 당장 대답하지 못했고 아버지가 거실 쪽으로 나간 뒤에야 밥을 뜨기 시작했다. 승호는 거 보란 듯이 히죽거렸고 승연을 향해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암튼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 없다니까.” 승호는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며 승연에게 말했다. “너, 괜찮은 공돌이 하나 소개받을래? 지난번 소개했던 후배 놈은 내가 봐도 디디해. 너한테 연락 없냐고 계속 묻기만 하더라. 우리 집 전화번호 아는데 너한테 연락하면 되지 나한테 왜 묻는 건지 등신 새끼. 오빠가 딴 놈으로 해 줄게. 아주 괜찮은 놈이 하나 있어. 무슨 방직 아들이라는데 회사 이름은 까먹었고 샤프하게 생겨서 너랑 맞을 것 같네. 언제 시간 되는지 물어볼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
 
승연은 오빠 승호에게 대답은 안 했지만 나갈 생각이었다. 아버지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된 듯 해서 기분이 좋았다. 식탁에 어머니와 단둘이 남은 승연은 이모가 듣지 못하게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우리 집 이모 월급 얼마 받아? 이모는 일요일·공휴일도 없이 우리 집에서 숙식하며 일하는데 이거 노동력 착취 아닌가? 정해진 근무 시간도 없고. 휴가는 주고 있나?”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 승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얘가 진짜. 아빠가 악덕 기업주인지 아닌지 살피더니 이제 엄마가 악질 안방마님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거냐?” 승연은 그냥 궁금했을 뿐이라고 대꾸했다. 엄마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근데 악질 기준이 뭐니? 의도는 순수한데 결과가 나쁜 거랑 의도는 불순했는데 친절한 것 중 어떤 게 악질이야?”
 
승연은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중요한 건 아버지 의도가 순수하니 결과 역시 좋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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