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홈술족’, ‘혼술족’ 등이 늘자 술과 관련한 재테크도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재테크 대상은 위스키, 와인 등과 같이 시중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고급 주류다. 오랜 숙성 기간을 거쳐야 하는 특성상 공급이 한정적이라 수요가 폭발할 때 가격은 크게 치솟는다.
물론 우리나라 현행법상 개인 간 주류 거래는 엄연히 불법이다. 그러기에 국내 위스키·와인 재테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다. 수백만원대의 고급 위스키의 공병을 중고시장에서 거래하며 최대 수십만원을 벌 수 있다. 또는 수천만원대의 값비싼 와인을 여러 명이서 돈을 모아 투자한 뒤 이를 다시 판매해 돈을 버는 조각투자도 술 재테크의 방법 중 하나다.
위스키 ‘루이 13세’ 공병, 중고시장서 30만원에 팔려
최근 수년 동안 침체기를 겪던 위스키 등 고급 양주에 대한 열기가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20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국내 위스키 수입액은 9254만8000달러(약 1087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6216만5000달러(약 730억원)와 비교해 48.9% 급증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수입량은 9118톤에서 8276톤으로 9.2% 줄었는데 이는 고가의 위스키 수입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2030세대의 관심이 컸다. 이들은 중년층의 전유물이었던 양주를 ‘어른들의 술’에서 ‘가치 있는 술’로 전환했다. 위스키와 음료를 섞어 마시는 ‘하이볼’을 중심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맛을 동시에 추구하며 위스키를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올해 2월 유통업체 이마트의 양주 매출 중 20·30대의 비중은 무려 52.2%에 달했다.
수요가 늘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특히 한정된 공급으로 희소성이 있는 위스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업계에 따르면 ‘맥켈란 18년’의 현재 가격은 35만원으로 지난해(26만원)와 비교해 34.6% 정도 상승했다. ‘글렌피딕 15년’도 6만5000원에서 8만3000원으로 27.7% 뛰었다. 3~4년 전만해도 공항 면세점에서 약 10만원에 구매할 수 있었던 ‘야마자키 12년산’ 역시 현재 국내에서 26~30만원에 팔리고 있다.
또한 위스키 가격은 한 번 올라가면 쉽게 내려가지도 않는다. 이러한 특성들을 고려하면 위스키를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국내 현행법상 개인 간 주류 거래는 엄연히 불법이다. 주세법에 따르면 주류는 주류소매업 및 의제 판매업 면허를 받은 자가 허가된 장소에서만 대면으로 판매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국내 중고시장에선 술 자체가 아닌 위스키 공병을 거래하는 재테크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21일 중고거래사이트에서 ‘루이13세’ 빈병은 20~3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루이13세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코냑(포도주 원료 브랜디)’으로 도매가는 약 390만원이다. 취급 매장에서는 400~500만원을 호가한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중반 루이13세 빈병의 시세는 대략 10~20만원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2년 새 10만원 이상 상승한 것이다.
특히 몇 년 전 출시된 ‘루이13세 블랙펄’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 세계에서 786병 소량 생산됨에 따라 빈병은 중고로 무려 19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국내에 6병만 수입됐기에 매물 자체는 많지 않다.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그밖에 2019년 2만원이었던 ‘발렌타인 30년’ 공병은 현재 5만원에 거래되며 2배 이상 올랐다. ‘맥켈란 21년’도 2019년 3만원에서 현재 10만원까지 상승했다. ‘글렌피딕 30년’ 역시 현재 9만원으로 2019년(3만원)과 비교해 3배 올랐다. 또한 올해 3월 50만원에 거래되던 ‘리차드 헤네시’는 7개월 만에 60~70만원대로 치솟는 모습을 보였다.
중고로 위스키 빈병을 구매했다는 김철호(29·남)씨는 “술 마시는 걸 좋아해서 양주를 자주 마시곤 하는데 어느 순간 위스키 빈병을 모으는 재미에 빠져 중고로 거래하고 있다”면서 “비싼 양주의 경우 매물이 많지 않아 명품처럼 시간이 흐르면 가격이 오를 것 같고 동시에 집을 꾸밀 수 있는 장식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나쁘지 않은 투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투자할 수 있는 항목이 다양화되고 확대되는 추세라 투자의 개념으로 희소성 있는 위스키 빈병을 사고파는 것 같다”면서 “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한테는 비싼 양주를 소장하고 있다는 일종의 과시를 나타낼 수 있고 일단 소장한 뒤 이윤을 붙여 나중에 팔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단돈 천원으로 고급 와인 투자 가능… 예상수익률 21%
위스키 빈병을 구매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조각투자로 눈을 돌려도 좋다. 조각투자는 예술품, 명품 등의 소유권을 주식처럼 잘게 쪼개서 거래하는 새로운 개념의 투자 방식이다. 쪼개진 소유권은 전용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거래되고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업계에 따르면 조각투자 플랫폼 트레져러는 지난달 29일 ‘2009 로마네 꽁띠 그랑 크뤼’ 조각 판매 모집을 24분 만에 완료했다. ‘신의 물방울’이란 애칭으로 유명한 로마네 꽁띠는 프랑스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2018년 뉴욕 소더비(Sotheby)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인 50만달러(약 6억원)가 넘는 가격에 낙찰된 바 있다. 이러한 와인을 1000원 단위 낮은 금액으로 조각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자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어당긴 것으로 풀이된다.
트레져러 관계자는 “부르고뉴 와인은 세계적으로 초고액 자산가들이 독보적으로 수집하는 고급 수집품 가운데 하나로 최근 몇 년 간 더 강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며 “개인투자자들이나 와인 애호가들에게 고가 와인에 투자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여러 고가 와인을 좋은 가격에 영국에서 소싱(대외구매)해 제공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와인 시세는 꾸준히 치솟고 있다. 로마네 꽁띠의 7월 말 가격은 3024만원으로 작년 7월(2081만원)과 비교해 45.3% 상승했다. ‘2000 르루아 르쉬부르 그랑 크뤼’도 같은 기간 767만원에서 1167만원으로 52.2% 올랐다. 고급 와인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좋은 헷징(손실 방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사태 등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때 고급 와인의 가격은 꺾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각투자 거래도 활발하다. 트레져러에서 현재 로마네 꽁띠는 조각당 매수금액 1005~1150원에 거래되고 있다. 매도금액은 1000원이다. 총 2900만원을 모집한 상태다. 수익화 예상 기간은 12개월로 내년 10월부터 1년 간 매각 절차를 진행해 판매한다. 예상 수익률은 약 21%다. 현재 시장 거래 가격은 2892~3138만원 수준이다.
주의할 점도 있다. 1인당 한 와인의 구매 한도는 1만 조각(1000만원)이다. 판매 기간 동안 50% 미만의 조각이 판매된 와인의 경우 자동으로 구매 취소되며 전액 환불 처리된다. 또한 희소성이 있긴 해도 예상 수익률은 보장되지 않는다. 각 와인의 과거 수익률을 기준으로 책정했기 때문이다. 와인의 가치 하락으로 손실이 입을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
이은희 교수는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실물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핵심은 희소성이다. 고가의 위스키나 와인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라며 “해당 주류의 역사가 오래되거나 특별한 스토리가 있을 경우 투자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재미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위스킨 빈병 같은 경우엔 진품인지 가품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하므로 미리 공부한 뒤에 거래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중고거래 사이트처럼 진품 여부를 판단해줄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해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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