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 보름이 훌쩍 지났다. 2월24일 시작된 이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장기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는 애초 속전속결로 전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과 더불어 전 세계 자유진영 국가의 반러·반전 결집으로 예상치 못한 난관에 처하게 됐다. 전쟁이 이처럼 교착상태에 머물게 된 배경에는 영토를 사수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뿐 아니라 반전 시위에 참여하고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품어준 세계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명백한 패전으로 줄달음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는 침공 즉시 우크라이나가 붕괴될 것이라는 전략적 오판을 했고 이로 인해 상당수의 자국 병사가 전사했으며, 러시아 국민도 경제제재로 막대한 불편을 겪고 있다. 전쟁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책임론이 머지 않아 불거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크라이나 피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러시아의 무차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국민 4100만명 가운데 4분의 1이 넘는 숫자가 난민이 됐고, 평화로웠던 도시들은 한순간에 폐허로 돌변했다. 특히 러시아 군대의 민간인에 대한 잔혹한 학살 정황이 드러나 이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전 세계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전 세계 각지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전쟁을 멈추라’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국제법을 명백하게 위반한 러시아를 향해 ‘전쟁만은 안 된다’는 국제사회 시민들의 반전(反戰)여론이 자국 정부에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 제재를 요구하고 있다.
조국을 위해 결사항전 나선 우크라이나 시민들
2월27일 큰 총으로 무장한 러시아군에게 호통을 치는 한 중년 여성의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빠르게 퍼졌다. 영상에서 한 중년 여성이 중무장한 러시아군 앞에 서서 두렵지 않다는 듯 “너희는 파시스트 점령군”이라며 “주머니에 해바라기 씨나 넣어두라. 네가 이 땅에 쓰러지면 해바라기가 자랄 것”이라고 용기있게 말했다.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의 국화(國花)다. 이 영상을 본 많은 이들이 “대단하다” “해코지 당하지 않길” 같은 댓글을 달며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CNN이 보도한 우크라이나의 한 할머니는 “러시아군대는 오지 못한다. 나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믿는다”라며 자신이 만들어 둔 화염병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CNN 기자에게 화염병 만드는 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6일 러시아군에 점령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의 중앙 광장에서 시민 2000여명이 모여 “헤르손은 우크라이나” “러시아군은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보도했다. 헤르손뿐 아니라 러시아군이 점령한 도시 곳곳에서 이 같은 시민들의 비무장 시위가 이어졌다고 외신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민과 주변국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고슴도치 가시처럼 뾰족한 모양의 ‘헤지호그’(hedgehogs)도 우크라이나의 결사적인 저항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무기다. 러시아의 탱크와 포병이 우크라이나에 진입했을 때 민간인들은 이 무기로 신속하게 방어 시설을 구축했다.
헤지호그는 날카로운 4개의 날이 바깥으로 뻗어 있으며 모양과 크기는 제각각이다. 차량과 탱크 등의 진입 통로를 막기 위한 용도로 쓰이며 전차 장애물이라 불리기도 한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용접 기술을 가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헤지호그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는 지난달 6일 트위터에 사진과 함께 “라트비아 자원봉사자들이 러시아 군용 차량 타이어를 뚫을 수 있는 2만개의 헤지호그를 보내 왔다”고 보도했다. 사진에는 뾰족한 철제 조각을 용접하고 있는 사람들과 바구니에 잔뜩 만들어 놓은 헤지호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러시아 침공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반격은 인터넷 여론전에서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황과는 별개로 여론전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선전 공세에 밀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전에서 선전전은 전쟁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전략 중 하나다. 막강한 미디어 파워를 가진 서방 언론이 우크라이나 편에 서서 보도하는 것도 선전전에서 러시아를 압도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를 통해 맨몸으로 러시아 탱크를 저지하고 화염병을 만드는 등 우크라이나인들의 눈물겨운 항전 소식이 전세계에 생생히 전파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국민의 결사 항전을 이끌고 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효율적이고 빠르게 국민과 소통하고 있으며 감동적인 연설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과 올렉시 레즈니코프 국방장관도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전황을 국민에게 신속하게 전파하는 한편 외국언론에도 일관되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공격에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고 있고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전쟁을 일으킨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세계의 여론은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푸틴 대통령의 정신 건강에 대한 의구심마저 제기하기도 했다.
“살인자 푸틴” “전쟁 멈춰라” 글로벌 반전(反戰) 여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면서 지구촌 주요 도시 곳곳에서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고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유럽, 미주, 아시아, 오세아니아, 중동까지 평화를 염원하며 우크라이나 편에 서겠다고 외치는 세계 시민들의 연대 목소리는 국경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울려 퍼졌다. 심지어 언론이 통제된 러시아에서도 당국의 체포 위협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규모의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로이터통신은 2월 26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 앞에서 1000여명의 시민이 ‘우크라이나의 즉각적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가입’과 ‘푸틴 반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러시아 출신의 한 시민은 인터뷰에서 “내가 태어난 나라가 부끄러워 이 자리에 나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각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오스트리아 빈,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로마, 핀란드 헬싱키 등에서 수천,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는 푸틴 대통령과 아돌프 히틀러를 합성한 사진을 들고 “푸틴은 살인자”라고 외쳤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자국 정부에 요구했다. 유럽을 넘어 미국과 멕시코, 남미 아르헨티나, 호주, 한국과 일본, 인도, 이란, 이스라엘에서도 전쟁 중단을 외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은 러시아 정부가 언론통제를 강화해 독립적인 매체들의 보도를 차단하고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허위정보를 전파할 시 최대 15년형에 처할 수 있다는 법안에 서명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전하는 독립 언론 웹사이트들이 줄줄이 운영중단 됐다. 이러한 정보통제 탓인지 러시아 시민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실제와 다르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라 부르지 않고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명명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내에서 푸틴 대통령 지지율은 침공 이후 오히려 상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는 3월말 조사를 통해 3월 푸틴 대통령 지지율이 83%로 2월 71%에 비해 12%p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전쟁반대 여론과 난민 지원
집회에 참석한 올레나 쉐겔(41)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41년 나치 독일의 공격 이래 가장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한민국 정부와 시민사회에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줄 것을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 종로 보신각 앞에서는 한국에 사는 러시아인들도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우리 러시아인들은 푸틴의 파시즘에 반대한다(We russians NO to putin’s fascism)”, “푸틴은 전범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등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국내에서는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한 응원과 위로의 글이 게시됐다. 일부 네티즌은 페이스북 등의 프로필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합성해 넣기도 하고, 트위터에서는 ‘#prayforukraine’(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러시아산 제품을 사지 말자”는 불매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사상자와 피란민이 급증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 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국외로 피난처를 찾기 위해 떠났고 650만명은 집을 잃고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다. 국내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 참여한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 3800여명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전쟁으로 가족을 잃는 등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내 3800여명의 우크라이나인의 출국 기간을 미뤄주는 임시조치를 넘어 전면적인 난민심사와 비자발급, 재정착 등을 신속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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