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월 문(文)’ ‘배울 학(學)’ 각각 역사가 유구하지만 한 단어로 쓰인지는 백수십 년밖에 안 된다. 19세기 후반 리터래처·리테라뛰르를 ‘문학(文學)’으로 옮긴 중영·중불 사전이 일본에 전해졌다. 중국 내 서양인들에 의해 제작된 사전들이었다. 개항(1854) 이전 일본에서 한정적이나마 문호가 개방된 외국인이란 기독교 포교 없이 장사만 할 네델란드인들뿐이어서 영어·불어 사전은 중국이 먼저다.
그 이전 한자문화권에선 ‘글(로 된 내용)’을 ‘배우다’ 즉 學文이었을 뿐 文學이 아니었다. 문자를 빌어 생각·감정에 호소하는 심미적 창작품(시·소설·희곡·수필·평론)이 현대적 의미의 문학이다. 특정 세계관 내지 가치관·이념을 반영할 수도 있다. ‘민족문학’ ‘프롤레타리아문학’ ‘순문학’ ‘대중문학’ 등이 그런 역사를 반영한다.
그래서 작품을 둘러싸고 삶의 통찰을 이끄는 철학성과 함께 정치성이 거론되곤 한다. 심지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문학은 한때 드러내 놓고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구국·계몽의 방법론이자 세상을 바꿀 매개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근대 들어 비로소 생겨난 단어·개념이 문학이지만 오늘날 편의상 중세문학·고대문학 등의 표현을 쓴다. 개념이란 한번 자리잡으면 과거를 소급하는 속성이 있다.
문학의 성립 과정은 국어의 성장사이기도 하다. 선진지역 작품들의 번역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서 대량으로 신조어가 태어나고 기존 토속어의 재발견·재해석이 이뤄진다. 자본주의의 전개, 교육·활자매체의 보급, 문맹율 저하 등 근대국가(네이션 스테이트) 성숙 조건의 총합 아래 문학은 자라났다.
헌법 등 근대적 법체계가 법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구축했다면, 이들 개개인의 내면을 만든 게 문학이다. 법과 문학, 서로 생판 다른 세상의 얘기 같지만 양자는 사실상 근대사회의 안과 바깥이었던 셈이다. 20세기 초·중반 우리는 독자적 근대국가 건설의 기회를 놓치고 일본제국 국민(신민)으로 살면서 문학을 통해 머릿속 별도의 ‘우리나라’를 상상할 수 있었다.
우리말로 우리들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상상의 공동체’(네이션)가 다져졌다. 3·1운동 직후 등장한 주요 일간지들이 스스로의 과거·현재를 민족과 함께한 역사라고 자임하는 배경이다. ‘네이션 완성’ 과업이 어느 정도 달성되면 문학인보다 영화인이 더 각광받게 된다. 평론가가 당연히 문학평론을 의미하던 시대도 끝난다. 이른바 후기산업사회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