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대학 수학 교수 데이비드 버크호프(David Birkhoff)가 미를 수학적으로 계산한 적이 있다. 3개의 도자기를 놓고 계산했는데 가장 단순한 형태가 제일 높은 점수가 나왔다. 미는 지각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지각하고 인식하지 못하면 내면의 미를 찾기 어렵다.
시를 읽으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인식하거나 지각하지 못하면 그 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소설에 담긴 의미를 인식하거나 지각하지 못하면 그 소설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 형태도 마찬가지다. 그 형태에 담긴 내용을 인식하거나 지각하지 못하면 그 형태가 갖고 있는 미를 찾을 수 없다.
버크호프 교수가 제시한 미에 대한 계산은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힘들다. 그러나 감성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미에 대한 판단에는 사실 형태뿐 아니라 다른 요소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 알면 그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별하는 것은 인지 능력이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지식이다.
건축물을 관찰할 경우 대다수 사람은 형태적인 부분만을 판단한다. 실용적인 면보다는 형태에 점수를 더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 건축물은 사람을 위한 공간을 갖고 있다. 여기서 키워드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사람’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건축물은 조형물처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해야 한다.
경험의 방법을 이탈리아의 건축가 브루노 체비(Bruno Zevi)는 3가지로 구분했다. 육체적 경험·감성적 경험·이성적 경험이다.
육체적 경험이란 건축물이 추위·더위 등 자연으로부터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성적 경험은 디자인을 말한다. 훌륭한 디자인은 정신적인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성적 경험은 곧 기술적인 부분을 가리킨다.
앞의 두 가지는 건축을 전공하지 않아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는 건축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경험이다. 이 3개의 경험이 만족스러울 때 우리는 그 건축물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즉 건축물은 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직접 경험을 통해서 판단해야 옳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건축물은 이 경험과 관계가 있을까. 답은 ‘관계만 있다’이다.
아름다움은 약간 다르다. 역사를 통틀어 아름다움에 관한 정의는 정말 수도 없이 많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독창적인 것, 비트르브는 견고한 것, 알버티는 규칙적인 조화, 팔라디오는 기능과 구조적인 것, 칸트는 사실적인 것, 오토와 라이트는 실용적인 것 등을 미의 기준으로 꼽았다. 미에 대한 기준이 너무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미는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해외 관광을 가는 것은 대부분 아름다운 도시를 보기 위해서다. 그 아름다운 도시들에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고, 관광 일정의 대부분은 건축물을 보는 것으로 채워진다.
앞에서 미는 지각하고 인식하는 것이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은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이 기준은 개인적인 기준이 될 수도 있고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객관적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지식과 역사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사물에 대해 기술적인 부분을 파악하려면 쉽지 않다. 그러나 역사적인 배경은 여러 문헌을 찾아볼 수 있다.
건축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은 다른 어떤 형태의 사물보다 역사적인 배경이 중요하다. 건축의 형태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우리는 양식이라 부른다. 양식은 다양하다. 건축적인 시대 구분이 있었기에 양식 또한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아름다운 건축물이 왜 아름다운지 정확하게 찾아 낼 수 있다.
아름다움은 찾는 것이다.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이는 일부이다. 미의 가치는 의외로 다양하다. 앞에서 말한 브루노 체비의 3가지 체험을 한다면 사물에는 외면적으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아름다운 건축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정의도 있겠지만 전문가적인 판단이 이를 뒤집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이 두 부류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관찰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름다움의 정의를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beautiful(아름다운)’과 ‘aesthetic(미학적·심미적인)’이다. 전자는 외적인 부분이 강할 수 있는 반면, 후자는 내적인 부분이 강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자기 만족이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면 아름다운 것이다. 굳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느끼면 그것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우리 주변에 있어 좋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