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 있어서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독립운동가도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등 몇 명만 기억하잖아요. 이런 상황이 좀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음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보훈 문화를 새롭게 정착하는데 음악으로 기여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예요. 다른 예술작품보다 음악·뮤지컬이 파급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우리 문화를 노래에 담아 전파하는 사람이 있다. 주세페 김(김동규·56세)이다.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전공한 그는 팝페라 가수로서 우리나라 시(詩)에 직접 작·편곡을 하며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뮤지컬 제작에도 손을 댔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이야기를 담은 ‘페치카’와 강원도 원주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빛이 된 사람들’이 그의 대표작이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김 감독의 작업실에 방문했다.
우리 역사와 문학을 노래하는 팝페라 가수
강원도 원주 출신인 김 감독은 성균관대에서 산업심리학을 전공한 비(非)음대생이었다. 성가대 활동을 하고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노래를 사랑했지만 당시 음악은 그의 취미생활 중 하나였다. 대학교 4학년 때 인턴사원으로 대기업에 취직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것 같았던 그 시기에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뒤늦게나마 음악공부를 해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해 ‘음악심리’를 전공하고자 했다. 대학에서 4년간 배운 심리학과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하고 싶었다. 국내에는 없는 교육과정이었다. 심리학이긴 했지만 음악을 전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음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 관련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이를 위해 그는 경원대 성악과 3학년에 편입해 졸업한 뒤 1994년 이탈리아 로마 유학길에 올랐다.
“음악심리가 심리학 분야로서 음악 실기를 하지 않아도 불리한 것은 없었죠. 하지만 저는 실기를 해야지만 관련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음대를 거쳐서 음악심리를 공부해야 된다고 본 것이죠. 이를 위해 시작한 게 성악과 지휘에요. 이탈리아 살레르노 국립음악원에서 성악(오페라)을 전공했고 이와 함께 아카데미 같은 곳을 다녀서 지휘를 공부했죠.”
김 감독은 팝페라 그룹 듀오아임(Duo A.I.M)에서 활동하고 있다. 듀오아임은 1998년 이탈리아에서 결성됐다. 멤버는 그의 아내인 구미꼬 김(김구미·53세)이다. 두 사람은 유학 4~5년차에 이탈리아 학교에서 만나 동료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아임(A.I.M)은 이탈리아어 Amore In Musica(아모레 인 무지카)의 줄임말로 ‘음악 속의 사랑’이라는 뜻이다.
“저는 유학 4년차, 아내는 유학 5년차에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어요. 1998년이면 외환위기 사태로 힘들었을 때죠. 로마에 학교가 있었지만 집값이 비싸 주변 도시인 티볼리에서 살았어요. 서울로 치면 과천·의왕쯤 되는 곳이죠. 통학하는데 멀긴 했지만 산이 있어서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강원도 출신이라 그런 것 같았어요. 유학의 시작과 끝을 거기서 보냈죠.”
10여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02년 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탈리아에서 성악 공연을 선보인 것처럼 국내에서도 성악을 중심으로 공연활동을 이어갔다. 어느 날 음악적 한계를 느꼈다. ‘축배의 노래’, ‘오 솔레미오’ 등 유명한 곡을 불러도 가사를 이해하는 관객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높고 큰 소리에 환호한 것이지 가사에 감동해서 박수를 친 게 아니었다.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선 우리 감성을 늘리는 식으로 음악스타일을 바꾸어야 했다.
“우리가 외국어를 잘해도 그 나라 사람과 경쟁할 수 없어요.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어도 음악에 담긴 그 나라의 감성, 지성, 인문학적 사유 등을 이해하고 부르는 것은 쉽지 않죠. 미국사람이 가사 해석을 하지 못한 채 우리 음악을 제대로 부를 수 있을까요? 못하죠. 그런 이유에서 음악장르를 우리말이 담긴 크로스오버로 전향했고요. 창작곡도 만들었죠.”
창작곡은 유명 시인이 쓴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우연한 계기였다. 자주 교류하던 구상선생기념사업회의 모임에 참석해 정희성 시인, 구중서 시인, 김형영 시인, 이해인 수녀 등을 만났을 때 문득 이탈리아에서 유명 시인의 시가 노래로 불렸던 게 떠올랐다. 한국에서 음악을 만든다면 유명 시인들의 작품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으로 음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구상 시인, 이해인 수녀, 박노해 시인 등의 시를 노래로 많이 만들었죠. 처음에 성악에서 크로스오버로 전환했고 다음으로 ‘넬라 판타지아’, ‘콘 테 파르티로’와 같은 크로스오버 곡을 불렀고 그런 다음 이와 견줄 수 있는 우리말로 된 창작 팝페라로 다시 전환했죠. 2012~13년 즈음이에요.”
2013년 발표한 ‘아들아 아들아’가 대표적인 창작곡이다. 김 감독이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만든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 마리아 여사가 안 의사에게 보낸 옥중전언 내용이었다. 또 이상백 시인의 작품을 대상으로 10여곡 작곡하기도 했다. 그때 역사 관련 의뢰도 물밀듯이 들어왔다. 이후 한국적인 곡을 계속 발표할 수 있도록 예술단체 ‘랑코리아’를 설립했다.
“정기공연을 할 때 관객에 맞춰 그들이 좋아하는 노래만 부르면 우리나라 곡은 하나도 없고 외국 곡만 하게 돼요. 기존에 있는 노래만 계속 답습하니까 발전이 없다고 느꼈죠. 그래서 랑코리아를 만들었어요. 한국적인 곡을 창작해서 발표하는 단체죠. 매년 창작곡을 발표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그간 정기공연에서 창작곡을 발표하면서 기존 곡을 부르지 않았어요. 창작곡을 많이 쌓다보니까 나중에 뮤지컬 ‘페치카’를 제작할 때 어렵지 않았죠.”
잊힌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뮤지컬로 담아
김 감독은 음악감독(작곡가) 외에도 뮤지컬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페치카’가 대표작이다. 두 번째 작품은 어린이 뮤지컬 ‘빛이 된 사람들’이다. ‘빛이 된 사람들’은 70·80년대 강원도 원주시에서의 문화예술인 삶과 독재정권에 항거한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원주 출신인 김 감독으로서는 학창시절 체험한 일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생동감 있게 역사 뮤지컬을 만들 수 있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역사 사료를 검토하면서 3년 전부터 뮤지컬 ‘빛이 된 사람들’을 조금씩 만들기 시작했어요. 코로나19를 피해 부모님을 원주로 모시면서 보냈던 기간에 작업했죠. 당시 코로나19로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창작활동에 보다 매진할 수 있었어요.”
어린이 뮤지컬 ‘빛이 된 사람들’은 ‘원주역 조 한알 할아버지’와 ‘삥땅 사건’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중 ‘원주역 조 한알 할아버지’는 원주역에서 한 아주머니가 소매치기로 500만 원을 잃어버리고 이 소식을 들은 장 선생이 원주역에서 소매치기 일당을 찾아가 타협하고 소매치기 일당이 장 선생에게 감동을 받고 돈을 돌려줬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 감독은 어린이 뮤지컬 ‘빛이 된 사람들’을 준비할 때 경쟁보다는 자율성과 협동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뮤지컬을 처음 접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3시간씩 30시간 교육을 진행했는데 누구를 콕 찍어서 배역을 정하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에게 대사를 교대로 읽게 하면서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갖도록 했다. 오늘은 A가 주인공, 내일은 B가 주인공 이런 식으로 2개월간 대사만 연습한 것이다.
“대사 연습을 하고 배역을 정해야 했는데 저는 개입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정했죠. 아이들은 누가 어떤 배역에 잘 어울리는 잘 알아요. 이게 바로 민주주의 교육이고 협동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도 잘하지만 누군가 열심히 하면 배역을 사로 양보하고 이런 것들이 어린이 뮤지컬 제작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성과라고 생각해요.”
수십 년간 예술 활동을 하면서 아쉬운 점으로는 우리 사회의 편협한 문화적 취향을 꼽았다. 문화예술을 접할 때 다양함보다는 돈이 되는 상업적인 면만 쫓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선호하는 예술만 몰아가는 것은 자멸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농업인들이 모두 쌀농사를 짓지 않고 다른 걸 하면 나중에 쌀은 어떻게 구합니까? 결국 우리한테 피해로 돌아오죠. 예술이 형이상적이라서 과소평가하기 쉽지만 정신을 지배할 수 있어 간과할 수 없죠. 따라서 문화예술이 치우침 없이 다양하게 공존해야 한다고 봐요. 돈이 되는 것만 조장하면 순수 예술은 도태되고 말죠. 그러면 기간산업이 흔들리는 것처럼 우리 정신도 흔들릴 수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김 감독은 뮤지컬 ‘페치카’가 국민 뮤지컬로 정착할 수 있도록 완성도 높게 각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역사적 검증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분석할 계획이다. 또 보훈처 소속 비영리단체로서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외에 한국전쟁과 관련한 작품도 다룰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아직은 구상 단계 수준이다.
“6·25전쟁 관련 작품만 나오면 보훈처에서 다루는 가장 큰 사업에 대한 작품을 모두 내놓게 되는 것이에요. 구상 시인은 6·25전쟁의 이념적 위치에서 봤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하셨죠. ‘적군 묘지 앞에서’라는 시로 전쟁의 참상과 분단의 현실을 녹여냈잖아요. 아직 제목도 정하지 않았지만 구상 시인을 중심으로 해서 전개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