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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올해도 재계에서 가장 큰 화제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가운데 아연과 연 생산 세계 1위 기업으로 영풍그룹 매출 70% 이상을 책임지면서 한때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넘었던 핵심계열사다. 장씨 집안이 고려아연 대주주지만 최씨 집안이 경영을 맡아왔다. 영풍그룹은 그동안 “장씨가 영풍을 맡고 최씨가 고려아연을 맡는다”는 공동경영 원칙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씨 집안 3세 최윤범 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 경영권 분쟁이 시작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고려아연 주식을 1.75%(2024년 3분기 보고서 기준)만 갖고 있다. 직계가족을 포함하더라도 2.2%에 불과하다. 그러나 2022년부터 한화그룹․LG그룹․현대차그룹을 백기사로 불러들이더니 고려아연을 소유하기 위해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다. 최대주주 자리가 위험해지자 장형진 영풍 고문도 지난해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맞대응했다.
경영권 분쟁이 터지자 최씨 집안은 중국 자본에 고려아연을 넘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MBK파트너스가 중국 자본이라서 고려아연을 중국기업에 팔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 토종 펀드인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을 중국에 팔지 않을 테니까 흑색 선전을 그만두라고 반박했다. 장씨와 최씨의 75년 동업은 언제부터 어떻게 깨졌을까?
공동경영 원칙
장병희(1913~2002)와 최기호(1909~1981)는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만난 이들은 남대문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전기기구를 팔던 장병희와 발전기를 팔던 최기호는 의기투합해서 1949년 11월 영풍기업(현 영풍)을 공동창업했다. 장씨와 최씨는 서로 존중하며 공동소유와 공동경영 원칙을 지켰다.
영풍은 중화학공업 발전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려면 철강과 비철의 소재 자립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정부가 주도한 포항제철(현 포스코)은 1968년 설립됐고, 이때부터 영풍은 경북 봉화군에 아연 생산시설 석포제련소를 짓기 시작했다. 석포제련소는 낙동강 상류에 자리를 잡은 탓에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이런 까닭에 영풍은 1974년 자회사 고려아연을 설립해서 울산 지역에 온산제련소(고려아연)를 지었다.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은 영풍그룹의 경영원칙이었다. 장씨와 최씨는 영풍그룹 지분을 절반씩 보유했고 장씨가 석포제련소(영풍)를 경영하고 최씨가 온산제련소(고려아연)을 경영했다. 1976년 영풍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장씨(28.33%)와 최씨(26.97%)의 지분이 엇비슷했다. 그러나 공동소유는 1978년부터 깨졌다. 최씨 집안이 지분을 팔면서 영풍그룹 최대주주는 장씨 집안의 몫이었다. 장씨 집안(27.17%)은 영풍그룹 주인이 되었으나 최씨 집안(12.88%)과 공동경영 원칙을 깨트리지 않았다.
영풍그룹 공동 소유주에서 2대 주주로 전락한 최씨 집안은 1993년부터 30년 넘게 홀로서기를 고집했다.
1차 경영권 분쟁
최창걸 회장은 최기호 창업주의 큰아들이다. 모회사 영풍과 자회사 고려아연은 인사교류를 종종 했지만 1989년부터 끊겼다. 최씨 집안이 1990년 가졌던 영풍 지분(21.05%)은 장씨 집안 지분(32.91%)보다 훨씬 적었다. 그러나 최창걸 회장은 당시 고려아연 계열사를 동원해서 그룹 지주사 영풍 지분을 매입했다.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은 1993년부터 시작했다.
제1차 경영권 분쟁의 승자는 장씨 집안이었다. 최씨가 지분을 30% 넘게 모으자 장씨도 맞대응했다. 장병희 창업주 차남 장형진 회장은 40%대 지분을 확보해서 최대주주 자리를 확실하게 지켰다. 장씨 집안이 1996년 지분을 47.57%까지 모으면서 고려아연이 일으킨 경영권 분쟁은 장형진 회장의 승리로 끝났다.
장씨와 최씨는 신사협정을 맺었다. 장형진 회장은 1996년 최창걸 회장에게 동업정신을 지키자고 제안했다. 주식의결권 신탁계약을 통해서 상대 가문의 경영권을 존중하고 지분율에 영향을 주는 신주발행 등에 대해선 동의를 받자는 내용이었다. 장씨와 최씨 2세는 우여곡절 끝에 고려아연 경영을 존중할 테니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지 말자고 합의했다.
최씨 가문 안에도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이 있었다. 최기호 창업주 넷째아들 최창규 회장은 2009년 당시 영풍정밀을 경영했다. 최기호 창업주 큰손자이자 최창걸 회장 큰아들 최우현(데이비드 최)은 영풍정밀 지분 30%를 확보한 뒤 작은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다. 최창규 회장은 조카의 반란에 당황했지만 장형진 회장의 도움으로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최씨 집안 장손은 최우현이다. 최우현은 영풍정밀 사태를 일으킨 뒤 미국에서 데이비드 최란 이름으로 산다. 이때부터 최창걸 회장 작은아들 최윤범은 사실상 최씨 집안 장손 역할을 맡았다. 최윤범은 미국에서 세인트폴 고교와 애머스트대(수학과)를 거쳐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미국 뉴욕주에서 기업인수합병(M&A) 변호사로 활동했던 최윤범은 2007년 고려아연에 입사했고 2022년 아버지(최창걸)에 이어 고려아연 회장이 됐다.
한화그룹 백기사 등장
아들과 아버지는 목표와 방법이 달랐다. 최창걸이 영풍그룹 경영권을 노렸다면 최윤범은 핵심계열사 고려아연을 목표로 삼았다. 아버지가 지분을 모았다면 아들은 백기사를 모았다. 한화그룹 후계자 김동관 부회장과 세인트폴 고교 동문인 최윤범 회장은 한화그룹을 비롯해 LG그룹과 현대차그룹에 유상증자 및 자사주 처분이란 방법을 활용해서 우호지분을 확보했다.
최윤범 회장은 한화그룹을 등에 업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고려아연은 2022년8월 한화그룹 계열사(한화H2에너지USA)에 유상증자(99만3158주․지분 5%)했고 2022년 11월 한화그룹 지주사 ㈜한화와 자사주(23만8358주․지분1.88%)를 교환했다. 한화그룹이 당시 유상증자와 자사주 교환을 통해 확보한 고려아연 지분은 6.88%였다.
고려아연 홀로서기는 한화그룹 승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한화에너지는 2024년 11월 고려아연으로부터 지주사 한화 지분 7.25%를 취득했다. 김동관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한화에너지가 지주사 지분을 22%대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승계 작업까지 처리한 셈이다. 한화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인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 아들 3형제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이런 까닭에 재계에선 고려아연(최윤범)이 우호지분(한화그룹)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백기사(김동관)의 한화그룹 승계를 도왔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한화그룹과 더불어 LG화학도 백기사로 꼽힌다. 고려아연은 2022년 11월 자사주 39만1547주(지분 1.97%)를 LG화학 주식 36만7529주(지분 0.47%)와 맞바꿨다. 고려아연은 당시 한국투자증권과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세계적인 원자재 거래업체 트라피구라에도 자사주(지분 4.35%)를 처분했다. 회사가 보유하는 자기주식(자사주)은 상법상 의결권을 갖지 못한다.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자사주를 백기사에게 팔아치움으로써 우호지분을 대폭 확대한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고려아연 우호지분으로 손꼽힌다. 고려아연은 2023년 8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현대차그룹 해외 법인(HMG글로벌)에 지분 5%를 넘겼다. 고려아연은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 니켈 공급망 구축을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최윤범 회장의 고려아연 경영권 방어에 도움이 됐다. 고려아연 2023년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최윤범 회장이 가진 지분은 1.75%(34만2507)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호지분을 포함해서 30%대 지분을 확보하면서 30년 만에 다시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다.
2차 경영권 분쟁
격투기가 취미인 최윤범 회장은 승부사 기질을 가졌다.
고려아연은 2024년 3월 영풍을 상대로 선전포고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오랜 내부 회의 끝에 영풍을 동업자가 아니라 경쟁자로 규정한다”고 말했다. 동업을 깬 최씨 집안은 2024년 3월 영풍그룹 핵심계열사 서린상사 경영권을 뺐었다. 영풍그룹 해외 유통 및 판매사인 서린상사는 최씨 집안 측이 최대주주지만 오랫동안 장씨 집안이 경영했던 회사다. 고려아연이 서린상사 이사회(9인)를 장악하자 장씨 집안 3세 장세환 대표이사는 경영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영풍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영풍은 한국 최대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와 손잡았다. 장씨 집안을 대표하는 장형진 영풍 고문은 고려아연 지분 33.13% 가운데 절반인 16.56%에 1주를 더 MBK파트너스에 넘기기로 약속했다. 그러자 시중에는 MBK파트너스가 중국 자본이라서 세계적인 기업(고려아연)이 중국에 팔려갈 거란 소문도 돌았다. 이와 관련하여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중국 매각은 절대 없다고 단언하면서 고려아연 주식을 모았다.
연초 40만원대였던 고려아연 주가는 연말 240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추석을 앞둔 9월13일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66만원에 사겠다며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곧이어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도 자사주 매입을 선언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고려아연 반격에 MBK파트너스는 공개매수가를 주당 83만 원으로 올렸고, 덩달아 고려아연도 자사주 매입가를 주당 89만 원까지 올렸다.
당황한 고려아연의 승부수는 유상증자였다. 고려아연은 2024년 10월30일 일반공모 유상증자(2조5000억 원 규모) 계획을 발표했다. 154만3000원(10월29일)이었던 주가는 하한가로 떨어졌다. 당시 자본시장에서 “공모가(67만 원)가 주가보다 절반 이하이고 자사주 매입가(89만 원)보다 낮다”며 고려아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게다가 유상증자 물량(373만 주) 가운데 20%를 고려아연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한다는 이유로 경영권 분쟁을 위해 소액주주를 무시한다는 볼멘소리까지 터졌다.
소액주주의 불만은 컸다. 고려아연이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회사 빚으로 자사주를 공개매수하더니 주식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유상증자로 일반주주의 주머니를 턴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영풍이 장형진 고문을 위해 고려아연 경영권을 뺏으려 한다던 비판은 순식간에 고려아연과 최 회장을 비판하는 여론에 덮였다. 금융감독원도 자본시장의 목소리를 묵과할 수 없었는지 즉각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대해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비판여론 시달렸던 최윤범 회장은 유상증자를 포기했으나 결국 발목까지 잡혔다. 금융감독원은 8일 고려아연 유상증자 사건을 불공정거래로 판단해서 고려아연 경영진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이첩했다. 금감원 자본시장 특별사법경찰은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공개매입할 때 “향후 재무구조 변경을 가져오는 계획이 없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유상증자 발표를 중요 사항이 누락된 허위 신고이자 부정거래라고 판단했다. 자본시장법 178조는 증권 매입 등 금융투자상품을 매매할 때 부정한 수단과 위계 사용을 금지한다.
누가 이길까?
지분만 놓고 보면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이 유리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지분 4.5%)이 고미바다 고려아연 의견을 따랐기에 속단할 순 없다. 영풍․MBK 연합은 23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의결권을 46%대까지 확보했다. 고려아연이 확보한 의결권도 40%를 넘어섰다고 알려졌다.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쪽에 선다면 의결권 차이가 2%p 미만이므로 소액주주의 선택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국민연금은 17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의결권 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고려아연 임시주총 최대 관심사는 집중투표제다. 최윤범 회장 측은 소수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히려 경영진의 이익을 지키는 제도란 비판도 있다. 대주주인 영풍․MBK 연합보다 최 회장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ESG기준원은 14일 기관투자자에게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이사 후보 14인 선임안을 올렸고, 고려아연은 이사 수를 19명으로 제한하는 안을 올렸다. 최 회장 측은 사외이사 7명 선임안도 제출했다. 임시주총 결과에 따라서 이사회 구성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임시주총에서 이기든 3월로 예상되는 정기주총에서 또 싸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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